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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유괴산업』의 천국|10년간 4백30건, 40명 피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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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10년간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유괴 또는 불법 감금사건은 4백30건으로 이 가운데 4O여명이 살해됐으며 몸값으로 지불된 돈만도 2억달러(1천4백억원)를 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납치유괴 사건이 자주 일어나고 엄청난 몸값이 지불되고 있어 시민들 사이에선 「유괴산업」 혹은 「유괴주식회사」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유괴사건이 자주 일어나지만 피해 없이 해결되는 경우가 드물어 경찰능력의 한계를 걱정한 나머지 시민들 스스로의 유괴방지를 위한 민간자위기구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납치사건이 잦았던 곳은 마피아의 발상지 시칠리아와 칼라브리아였으나 지난 10년 사이에는 경제중심지 로마로 옮겨갔고 몸값 요구액도 수백만 달러인 경우가 보통이다.
이탈리아에서 성업중인 숱한 유괴주식회사들 가운데 가장 악명 높은 조직은 최근 당국에 검거된 「라우도비노·드·상티」를 두목으로 한 범죄단체.
「절름발이 렐로」란 별명으로 통칭되는 「드·상티」는 전과 3범에 탈옥 3회의 기록보유자로 법행 수법의 잔인성 때문에 최근 교황「요한·바오로」2세조차 그의 구원을 위해 기도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절름발이 렐로」의 범행 중 그 잔인성이 극에 달했던 것은 「조반니·팔롬비니」 살해사건이다. 이탈리아의 코피산업계를 주름잡아「코피왕」으로 불리는 「팔롬비니」옹(81)은 지난해 4월 이들에게 납치됐다가 가족들이 몸값 50만 달러를 지불, 풀려나기 직전에 도망치다가 살해됐다.
가족들이 자신의 몸값을 지불한 사실을 몰랐던 「팔롬비니」옹은 로마 남쪽 60km 지점에 있는 감금장소를 벗어나 밤새도록 걸어서 달아났으나 끝내 「렐로」일파에 되붙잡혀 살해됐다.
이 사건 후 「렐로」는 로마에서 13세 소녀를 유괴해 가족들에게 협박을 하다가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렐로」는 경찰 심문에서 자신의 죄를 가볍게 하기 위해 자신은 하수인일 뿐 주모자는 마피아라고 떠들어댔으나 「렐로」일당의 범행으로 밝혀져 6건의 유괴살해 혐의로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심문과정에서 「렐로」일당은 지금까지의 범행 외에 TV 여자 아나운서, 여배우 「비나·리지」, 영화 및 연극배우 「라프·발로네」의 아들, 이탈리아 공산당 당수 「베롤링구에르」 장녀 등의 유괴도 기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모두 이름난 부자는 아니지만 몸값을 마련할 정도의 실력은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체포됐으나 「절름발이 렐로」일당과 같은 범죄주식회사는 아직도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에 이탈리아 국민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게다가 경찰의 능력 또한 무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근에 시민들의 자위기구로 「유괴 사전 박멸 협회」가 탄생했다.
회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피납 경험이 있는 피해자들로 6천만 프랑의 기금까지 모았다. 이 기구는 개과천선한 전직 유괴범들을 월급을 주고 고용해 다른 유괴조직의 정보를 캐내 하나하나 제거해나가 유괴조직을 뿌리뽑을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파리=주원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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