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곤소곤 연예가] 성동일이 받은 위대한 유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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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성질이 평(平)하고, 여러 약재들을 조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한약재, 감초. 약방에 이 감초가 빠질 수 없듯이 방송에서도 절대 빠질 수 없는 이가 있다. 바로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우리 모두를 감쪽같이 속인 인천 토박이 배우 성동일.

"많은 분이 드라마 '은실이'의 빨간 양말 역할 때문에 전라도가 고향인 줄 아시는데, 예전 연극하면서 전라도 사투리를 선배들에게 매 맞아가면서 정통으로 배웠죠. 심지어 제가 표준말 쓰면 사람들이 어색하다고, 그냥 편안하게 사투리 하라고 할 정도라니까요."

전라도 사투리를 맛깔스럽게 구사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던 1999년 '빨간 양말'은 연기경력 20년차의 준비된 신인이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으리라. 그는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는 경상도, '그린로즈'에서는 충청도 사투리로도 열연했다. 아직 강원도와 제주도 방언을 못해봤다고 아쉬워하는 전국구 연기파, 성동일에게 사투리는 그가 손꼽는 세 번째 위대한 유산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는?

"이건 제 아이에게도 물려주고 싶어요. 보기와 달리 제 취미가 집에서 영화관람이거든요. 지금까지 모은 비디오.DVD가 1000여 편이 넘죠. 돌아다니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하루에 많이 볼 때는 3~4편, 일주일에 대략 10편 정도는 봅니다. 밥 먹듯이."

배우에게 경험보다 좋은 스승은 없다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맘껏 엿볼 수 있는 영화는 그의 연기에 가장 좋은 공부가 됐다. 내공 100단 애드리브의 귀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렇게 만들어졌나 보다.

"제 인생의 가장 큰 위대한 유산은 어머님이 주신 '가난'이에요. 철없던 시절에는 마냥 야속하기만 했었는데 어느 날 문득, 어머니가 너무 가진 게 없는 것이 울컥 고마워지더라고요. 만일 어머니가 그때 고생스러운 연극 그만두라며 장사 밑천 얼마라도 쥐여 주셨다면 배 곯아가며 연극판에서 12년 동안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연기라는 지푸라기를 놓지 않도록 비록 가난했지만 건강하게 키워주신 어머니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습니다."

2000년이 돼서야 처음으로 보일러 있는 집에 살게 됐다는 성동일. 보증금 50만원에 월 8만원짜리 반지하 단칸방에서 재래식 공중화장실을 쓰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 살고 있는 집 따뜻한 욕실의 화장실 물 내려가는 모습만 봐도 목이 멘다고.

문득 통장 잔고에만 연연하며 잃어버린, 분명 누군가 내게도 주었을 소중하고도 위대한 유산이 궁금해진다.

이현주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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