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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국민이 재정을 직접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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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경제선임기자

외환위기 직후 한국에는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이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이는 BIS가 정해 놓은 은행의 자본건전성 기준을 의미한다. 대출이나 보증을 포함한 위험자산 대비 자기자본비율이 8% 이상이면 은행이 든든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은행이 망하는 걸 본 한국인들은 예금할 때 이 비율을 꼼꼼히 따졌다. 지금은 아득하지만 외환위기를 겪은 세대라면 기억이 새로울 것이다.

 이제는 재정이 문제다. 그중에서도 관리재정수지를 잘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은행이 안전한지를 보는 잣대가 BIS 비율이라면 나라 살림이 거덜날지 아닐지를 보는 바로미터가 관리재정수지다. 외환위기가 엄습하는데도 관료들은 경제 펀더멘털(기초여건)이 단단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말만 믿다가 발등 찍혔던 과거를 생각하면 이제는 국민이 나라 살림 지키기에 직접 뛰어들어야 할 듯싶다.

 이를 위해선 좀 낯설지만 재정 구조를 알아둬야 한다. 정부가 일정 기간 거둬들인 총수입부터 보자. 총수입은 국세·기금·세외수입을 합한 금액이다. 이렇게 확보한 총수입에서 정부가 지출한 돈(총지출)을 빼면 통합재정수지다. 이 기준으론 그간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가량의 흑자였다. 균형재정(수입=지출)에 가까우니 국민이 아무런 걱정을 안 해도 된다.

 그러나 양파 껍질을 한 꺼풀씩 벗겨 보자. 기금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사회보장성 기금이 문제다. 사회보장성 기금에는 국민연금·사학연금·고용보험·산재보험 기금이 포함된다. 가파른 고령화로 100세 시대를 바라보면서 사회보장성 급여는 갈수록 늘어나게 돼 있다. 가장 큰 원인은 국민연금이다. 지금은 나가는 것보다 쌓이는 게 많지만, 갈수록 65세 이상 고령자가 늘어나면서 국민연금기금은 급속도로 줄어들게 된다. 그러면 통합재정수지도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 기금을 뺀 관리재정수지를 재정 건전성의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은 GDP 대비 적자가 그간 1%대에서 내년에는 2.1%로 갑자기 커진다. 금액으로는 올해 25조5000억원인 적자가 내년에는 33조6000억원으로 불어난다. 최경환 경제팀이 경기 부양을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을 선택한 결과다. 최 부총리는 “지금은 경제상황이 안 좋으니 확대 재정정책을 할 수밖에 없다”며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고육지책인 건 알겠지만 재정 건전성엔 비상이 걸렸다. 경기 침체의 여파로 당초 계획보다 세금이 안 걷히는 세입 결손이 2012년부터 3년째 이어지고 있어서다. 올해도 9조원이 펑크나게 생겼는데 내년에도 경기가 반전하지 않는 한 개선이 어려워 보인다.

 구멍난 재정을 메우려고 해마다 30조원 안팎의 빚을 내는 건 이제 연례행사가 됐다. 박근혜 정부 5년간 적자 국채 발행만 156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역대 정부 사상 최대 규모다. 국가 채무는 2018년 700조원을 바라본다. 여기에 공기업 부채와 공무원·군인연금 충당 부채(퇴직 후 줘야 할 돈)를 합한 국가부채는 2000조원을 훌쩍 넘어간다. 빚으로 틀어막는 나라 살림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남은 카드는 세 가지다. 첫째는 정부가 재정 형편을 솔직히 털어놓고 예년 대비 마이너스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다. 수입이 준 만큼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성은 제로(0)다. 기초연금·무상보육 같은 복지예산 수요가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서다.

 둘째는 증세 카드다. 결국 주요 세목인 법인세·소득세·부가가치세 세율을 올리는 것인데, 나랏빚으로 재정이 파탄나는 것보다는 낫다. 1930년대 미국을 대공황에서 탈출시킨 지렛대가 주요 세목에 대한 누진세 확대를 통한 증세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불황이라고 해서 못할 이유가 없다.

 셋째는 예산 낭비 차단이다. 재정 전문가들은 “예산 낭비만 줄여도 전체 예산의 5~10%는 줄일 수 있다”고 진단한다. 사실 예산 낭비는 공무원들이 1차적으로 일으킨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예산이 곧 권력이니 모든 정부기관은 해마다 ‘묻지마 예산 증액’을 요구한다. 기획재정부는 깎으려고 애쓰지만 온갖 로비에 휘둘리고 현장을 모르니 부르는 대로 주는 경우가 많다. 먼저 빼먹는 게 임자라는 이기적 행동이 ‘공유지의 비극’을 초래해 국가 재정을 더욱 황폐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전달체계가 불투명해 실제 집행 상황을 알기 어려운 복지 분야의 누수는 심각하다. 무자격자가 눈먼 돈 빼먹듯 하고 있어서다. 감사원이 최근 3년간 밝혀낸 누수액만 7000억원에 달한다.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지출만 효율화해도 재정 악화가 완화될 수 있다. 공무원이 내는 돈보다 받아가는 돈이 많아 재정 악화를 부채질하고 있는 공무원연금 개혁도 시급하다. 재정파탄으로 쪽박을 차면 연금 자체를 못 받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국민이 내 재산을 지킨다는 심정으로 재정을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김동호 경제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