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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그리고 오모테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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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헌
이정헌 기자 중앙일보 도쿄특파원
이정헌
도쿄 특파원

도쿄 생활 3개월째. 하루 최소 8번 엘리베이터를 탄다. 출퇴근을 위해 아파트·사무실을 오르내릴 때, 취재와 점심식사를 다녀올 때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버릇이 생겼다. 문이 열리는 짧은 순간 주위를 살핀다. 일본인 동승자가 있으면 신경이 쓰인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몸에 밴 일본인들의 친절이 때론 부담스럽다. 다 같이 내려야 하는 순간에도 동승자는 내릴 생각을 안 한다. 안쪽 벽에 바짝 붙어 문 열림 버튼을 누른다. 서로 양보를 하다 보면 3~4초 신경전까지 벌인다. 고맙다고 인사하며 먼저 내리는 게 차라리 낫다는 걸 몇 차례 시행착오 끝에 깨달았다.

 일본인의 친절과 배려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는 아침마다 1층 현관 앞에 서서 인사를 한다. ‘오하요우고자이마스(おはようございます·안녕하세요)’는 기본. 유치원 아이들에게도 ‘잇데이랏샤이(いっていらっしゃい·다녀오세요)’를 외친다. 지하철·식당은 물론 사우나 안에서도 ‘스미마셍(すみません·죄송합니다)’ ‘아리가토고자이마스(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고맙습니다)’를 연발한다. 영화관에선 제작진 이름 자막이 모두 올라가고 불이 환하게 켜질 때까지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 영화가 채 끝나기도 전에 우당탕탕 출구로 몰리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제작진에 대한 예의, 다른 관객들을 위한 배려다. 덕분에 영화가 남긴 여운을 만끽할 수 있다.

 이처럼 친절이 생활화된 일본에서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오모테나시(お持て成し) 운동이 다시 일고 있다. 오모테나시는 진실된 마음으로 손님을 접대한다는 뜻이다. 보이는 행동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 반듯하게 가다듬는다. 지난해 9월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프레젠테이션에서 여성 아나운서 다키가와 크리스텔은 ‘오·모·테·나·시’를 한 음 한 음 끊어 발음한 뒤 두 손을 모았다. 일본인의 친절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고 도쿄 올림픽 유치에 기여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최근 “한국식 오모테나시를 배우자”란 기사를 실었다. 인천 아시안게임 때 한국 자원봉사자들이 보여 준 우호적인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고 썼다. 경기를 마친 선수들에게 승패나 국적에 상관없이 박수와 환호성을 보낸 걸 높게 평가했다. 대조적으로 일본 카메라맨들은 유도 시상식장에서 일본과 한국 선수가 어깨동무를 하고 있을 때 “일본인끼리만!”이라고 외쳐 우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비판했다. 선수와 관중들의 마음까지 살피지 못한 무례를 지적했다.

 과연 ‘한국식 오모테나시’는 본받을 만한 수준일까. 이달 초 중국 포털사이트 바이두 게시판에서 벌어진 논쟁. “한국과 일본, 어디로 유학 가는 게 좋을까요”란 질문에 중국 누리꾼들이 앞다퉈 댓글을 달았다. “한국이 좋다” “일본 교육은 아시아에서 톱이다” 등 엇갈리는 의견들 속에 댓글 하나가 순간 가슴을 찔렀다. “일본인은 친절한데, 한국인은 중국인을 깔본다.” 부정하고 싶다는 생각, 잠깐. 뼈아픈 지적에 두 손을 모으고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본다.

이정헌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