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스카우트 경쟁의 만화경(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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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스카우트의 파문이 반드시 대학 측의 극성과 과열만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선수들의 자세도 한몫 거들기 일쑤다. 손바닥은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거와 같다.
어느 쪽의 조건제시가 더 군침이 도는 것인가 하고 이리저리 재보는 사팔뜨기씩, 양다리 걸치기 식 타산(타산)주의가 어린 선수와 그들의 학부모들 사이에 팽배해 있는 것이 엄연한 세태다.
진효준이 그렇고 최동원이 그랬으며 강타자 김용희 (한양대로부터 고려대로)등 모름지기 스카우트 말썽에 오른 선수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모호한 태도 때문에 사태를 악화시키게 마련이었다.
74년말 고교야구를 풍미한 대구상고의 김영근·하광희 두 선수가 한양대에 이어 고려대에도 진학 동의서를 써주어 분란을 야기 시켰다.
이들의 신변을 확보해 놓은 곳은 한양대였으나 고려대는 한양대에 없는 학교장 추천서를 무기로 하여 팽팽히 맞서 두 대학이 모두 두 선수를 대학야구연맹에 가 등록하는 촌극을 연출했다.
불에다 기름을 끼얹는 격으로 선수들의 출신고교도 스카우트싸움에 조역(조역)으로 등장한다.『엄연히 이해관계가 있음』을 내세운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선수를 진학시키겠다는 욕심이다. 이 때문에「끼워 팔기」라는 비교육적인 거래가 성행된다.
고교 측은 당사자의 희망에 아랑곳없이 좀더 많은 선수를 덤으로 입학시켜 주겠다는 대학으로 진학토록 선수들을 몰아세운다. 진학에 절대 필요건인 학교장추천서가 이래서 말썽의 불씨가 된다.
김영근·하광희의 경우도「끼워 팔기」의 문제가 개재된 사례다. 지난10년간 축구·야구·농구 등 소위 인기종목의 1급 선수들은 각각 2∼3명의무명선수 혹은 사이비선수의 대학진학에 가장 효과적인 도구로 악용되어 왔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79년 초 축구의 김창효(부산상고) 사건도 비슷한 유형.
청소년대표로 제2의 김호로 각광받던 유망풀백 김은 고려대에 마음을 두었으나 김의 학교장추천서는 연세대로 날아갔다.
김은 결국 고려대에 입학했으나 연세대는 끝내 양보하지 않았고 김은 1년 동안 선수생활이 불가능했다.
한창 성장기에 발목이 잡혀버린 김은 이 때문에 축구선수로서 쇠락 ,지금은 축구 팬의 기억에서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같은 해 역시 축구의 김석원 (중대부고) 도 어른들의 결사적 싸옴에 희생된 제물이다.
김의 부친은 축구계중진인 김찬기씨. 김씨 부자는 중대부고와 같은 계열인 중앙대로의 진학이란「당연한 약속」을 깨고 고려대 입학을 원했다.
그러나 김을 키우는데 힘을 써 온 중대부고와 중앙대 측은『의리의 배반』을 용납할 수 없다고 발끈, 끝내 김의 고려대 진학추천서를 발급하지 않았다.
김은 고려대학생이, 김한근은 결국 한양대학생이 되었으나 1년 동안 선수 생활을 못해 후퇴의 날을 걸었음은 물론이다.
동기야 어떻든『못 먹을 밥에 재나 뿌리자』는 발상이 적용된 것이 김창효 김석원 케이스라 할 수 있다. 대학의 체육특기자가 되려면 출신고교장의 진학추천서가 꼭 필요하다.
아귀다툼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고수하는 선수들도 있다. 납치가 능사(능사)가 될 수 없음을 증명한 똑똑한 선수들을 소개한다.
77년 윤득영 (부산중앙·농구)은 오래 전부터 한양대와 인연을 맺고 있었다. 인연이라는 건 해외원정 때 경비보조를 받는등 덜미가 잡혀있었다는 뜻이다.
당시 윤과 쌍벽을 이루던 박종천을 연세대에「도둑 맞은」고려대는 안달이 났다. 고려대는 일본원정에서 막 돌아오는 윤을 부산거리에서 낚아챘다. P코치가 승용차에 윤을 싣고 서울로 호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윤은 며칠 후 기회를 노리다 고려대합숙소로부터 아직 깜깜한 새벽5시에 탈출을 결행, 한양대로 돌아갔다.
70년 강호석 (양정고·농구)도 연세대에 감금당하다시피 하다가『입학원서를 써 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슬쩍 빠져 나와 지난3년간 신세를 졌던 한양대를 찾아갔다.
작년1월 남자 궁도의 국가대표 박침수와 임인택(이상 전남체고)은 전남대 입학전형을 받기 위해 강남고속터미널에 나갔다가 한국체대 측에 피납, 승용차로 강릉으로 끌려갔다.
두 선수는 강릉관광호텔에 억류, 진로를 바꾸도록 세뇌공작 (?)을 받았으나 이틀 날 상오4시 역시 새벽탈출을 단행하여 간신히 전남대 입학전형을 치렀다.
선수들의 뜻이 흔들리지 않으면 최소한 납치라는 연례행사의 불법행위는 근절될 수 있을 것이다.

<박군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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