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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 방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여대생 박상은양 살해범인이 지금까지 경찰이 범인으로 단정했던 장경수군(22)이 아닌 정재파군(21)으로 검찰에 의해 밝혀지자 가장 충격을 받은 측은 경찰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진 24일 서울시경은 놀라움과 걱정이 엇갈린 묘한 표정이었죠.
이해귀 시경국장 등 간부들은 이날 아침 일찍 사건관할서인 강남경찰서에 진상을 알아보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상오11시쯤 대책을 세우기 위한 간부회의가 열렸고 이어『자칫하면 오해가 생길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수사요원들에게 함구령이 내려졌고 간부들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짖더군요.
-24일 상오 기자와 만난 강남서 수사간부들의 표정은 한마디로 벌레 씹은 얼굴이더군요. 한 간부는『수사를 하다보면 틀릴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며 애써 자위하려하며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하더군요.
-강남서에서 박양 사건을 전담했던 한 수사원은 정군이 범인이란 보도가 있은 24일 상오 7시30분쯤 장경수군의 집에 전화를 걸어 장군을 바꿔달라 했으나 장군이 설을 쇠러 23일 대구에 내려가 없다고 하자『16일 동안 계속 가두어 놓아 면목이 없다고 장군에게 전해달라』고 부탁을 했답니다.
-하지만 이 수사원은 장군 집에 사과전화를 건 뒤에도『장군 이외에 박양 살해의 범인은 없다』고 완강히 주장했습니다.
-한편 대구 장군의 집으로 전화를 걸자 장군의 동생이 전화를 받아 서울의 이모한테서 전화가 와 혐의가 풀린 것을 알고 있다며『오빠도 그 소식을 알고 외출했다. 이제 그 사건이야기는 지긋지긋하다』고 대답을 흐리더군요.
-장군의 어머니는『아들처럼 또다시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신중히 수사를 해주길 바란다』고 하더군요.
-『장군이 범인이란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해오던 한 시경간부는『경찰의 위신이 수렁에 빠지더라도 진범은 잡혀야 할 것』이라며『경찰은 장군의 수사 때도 검찰의 지휘를 받았고 이제 사건을 검찰에 불구속 송치한 만큼 할 말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경간부들 중에도 수사실무자들은『정군이 진범일 경우 경찰은 큰 망신을 당하게 된다』며『검찰이 사건전모를 발표했느냐. 무슨 물증이라도 나왔느냐』며 오히려 기자들에게 묻는 등 깊은 관심울 보이더군요.
-검찰의 존재이유를 다시 한번 확인한 이번 해프닝에 대해 검찰을 아는 사람들은 오랜만의 쾌거며 청량제라고 좋아하더군요. 수사도 매우 꼼꼼하고 조심스럽게 돌다리도 두드린다는 식이었어요.
-동부지청 안에서도 희비가 엇갈렸지요. 이 사건 전임지휘검사와 이번 수사검사의 경우 말입니다.
-하지만 부장검사부터 일반직원까지 모두『공식적인 발표 뒤에 이야기하겠다』『모르겠다』로 일관하는 바람에 취재진도 크게 애를 먹였습니다.
-이 사건을 김기준 검사로부터 물려받아 해결한 조병길 검사는 수사 개가를 자랑스레 이야기할 수도 있을 텐데 『평 검사로서 이야기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더 잘 알지 않느냐』며 사정을 하더군요.
-조 검사는 사건을 해결해놓고도 입조심은 물론 사진기자들을 피해 다녀 전임 김기준 검사가 매스컴 때문에 구절 수에 올랐던 것을 크게 의식하는 눈치였어요.
-이 사건은 강력사건인데도 이례적으로 영장담당판사의 집으로 검찰이 기록을 갖고 가 정군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 받았다지요.
-이날 동부지원의 영장담당은 서재헌 판사인데 하오2시가 넘도록 출근을 하지 않아 이상하다 싶었지요.
뒤에 들으니 보안을 위해 기록을 집에서 검토해 달라고 검찰이 서 판사에게 부탁까지 했답니다.
-조 검사는 정군을 24일 새벽 영장 없이 긴급 구속해 구치소에 수감해 놓고도 이날 하오 영장신청여부와 정군 신병소재를 묻자『법원에 물어보면 알 것』이라고 시치미를 떼고 능청을 떨기도 했지요.
-지난 얘기지만 장경수군을 놓고는 주임검사와 지청장의 의견이 엇갈렸다던데요.
-들리는 말로는 지난해10월 경찰이 장군을 구속 품신하자 김기준 검사는 범인이라고 구속을 주장했고 김주한 지청장은 석연치 않다고 머리를 가로 저었다는 거예요.
-이 때문에 검찰에서는 한때 지청내부의 불협화음 선이 돌기도 했지요.
-결국 한 여대생의 죽음이 전 수사기관을 뒤흔들고 말았군요.
-아직도 경찰간부들은 정군을 놓고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어요.
-어쨌든 검찰의 집요한 수사집념은 높이 평가해야될 것 같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부유층 자녀들이 각성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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