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친구 「파이잘」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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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내가 소련으로 떠나기 하루전인 10월10일 나는 「파이잘」국왕으로부터 전문 한 장을 받고 깜짝 놀랐다. 내용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우리에게 곧 라이트닝 전폭기 20대를 공급해 주기로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비기공급에 소분노>
이 전문을 받고 나는 웃었다. 그러나 내 보좌관들은 전문이 뜻하는 바를 모르고 의아해했다. 사실 그들은 라이트닝기 20대를 공급받기로 합의한 사실만 알고 었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왜「파이잘」국왕이 그 같은 전문을「지금」보냈을까. 나는 보좌관들에게 설명했다.
『이 전문은 「파이잘」국왕이 정중하고 숭고한 분일 뿐 아니라 영리하고 현명한 정치가임을 증명하는 것이오. 국왕은 내가 소련에 대항하는데 돕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오. 그는 내가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20대의 라이트닝기를 공급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천명해 줄 것을 희망하고 있소.』
내가 소련 지도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그들은 펄펄 뛰었다. 이 소식은 천둥번개처럼 소련의 세지도자「포드고르니」 (최고회의간부희의의장),「브레즈네프」 (서기장),「코시긴」(수상)에게 전달됐는대「브레즈네프」의 표정은 뱀에 물린 것처럼 일그러졌다.
그들은 내게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소련에 어떤 나라라는 것을 알면서 그 나라에서 비행기를 공급받겠다는 것입니까』 나는「브래즈네프」에게 대답했다.
『나와 나의 전임자 「낫세르」는 당신들에게 여러 차례나 목이 쉴 정도로 비행기를 공급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습니까. 당신들은 그것을 못들은체 했읍니다.

<몰래 찾아온 아사드>
우리는 공격하기 위해 항속거리가 긴 비행기를 달라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우리영토 깊숙이 공격해 들어왔을 때 격퇴할 수 있는 방어무기를 원했을 뿐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우리에게 그런 비행기를 준다고 하는데 거절할 바보가 어디 있겠읍니까.』
「파이잘」국왕은 당대의 지성인이었다. 그는 평온과 순수, 그리고 위엄을 갖춘 인물이었다. 신은 그에게 예리한 지성과 고결함과 예지력을 내려주셨다.
1973년 제4차 중동전(10월전쟁)이 터지기 얼마전인 그 해 8월 시리아의「하페즈·엘·아사드」대통령은 알렉산드리아 교외에서 정양 중이던 나를 비밀리에 방문했고 바로 직후 이집트-시리아연합군사령부 최고희의가 알렉산드리아에서 열려 전쟁에 대비한 준비를 토의했다.
그러나 「아메드·이스마일」원수 (후에 이집트국방장관·고인)는 시리아 군들이 신형무기에 익숙지 못하다는 구실로 전투에서 손을 뗄 것으로 예견했다. 시리아는 1년전에 이미 소련제 신형무기를 공급받아 사용법훈련을 받아오던 터였다.
그 반면에 우리 이집트 군은 전쟁직전 같은 무기를 공급받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완전히 그 사용법을 습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신형무기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장갑차, 혹은 「움직이는 포대」라 불리는 BMB였다. BMB는 탱크의 모든 것을 다 갖추었으면서 훨씬 많은 병사들을 수송할 수 있었다.
내가 소련군사전문가들을 추방한 후인 72년 소련은 시리아에 엄첨나게 많은 양의 무기를 대주었다. 한번은「아사드」대통령이 나에게 무기가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와 보관할 장소가 없어, 학생들이 방학에 들어간 학교에 쌓아두지 않으면 안되었다고 고백했다. 10월 전쟁 15일전 우리는 이스라엘이 시리아의 바로 그 학교들을 폭격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알라신에 전승기원>
10월로 정해놓은 전쟁 개시날자를 연기한다는 것은 전쟁을 무기연기 해야하는 위험이 따르는 것이었다. 더구나 골란고원은 11윌부터 다음해 봄까지 군사작전을 벌이기가 곤란했고 시간이 홀러 봄이오면 시리아가 어떤 핑계를 대고 빠져나가려할지 모를 일이었다.
이 같은 이유로 해서 시리아사령부의 태도를 알아차린 나는「이스마일」장군에게 내가 시리아로 날아가「아사드」대통령을 직접 만나겠다고 말했다. 또 2일간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를 방문하겠다고 밝혔다.
나는 두가지이유로 이일을 구상했다. 첫째, 「파이잘」국왕과 카타르의「셰이크·할리파」에게 대이스라엘전쟁이 임박했음을 알리고 둘째, 알렉산드리아에서 시리아와 비밀군사회의를 열고있던「이스마일」장군에게 회의를 끝내고 시리아사령관을 다마스커스로 돌려 보낼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시리아에서 국방장관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73년8월말 나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여 「파이잘」국왕과 오랫동안 회담을 가졌다. 나는 「파이잘」에게 말했다. 『신의 뜻에 따라 우리는 대이스라엘전쟁을 하기로 했습니다. 시리아의「아사드」대통령도 이미 동의했읍니다.』 그는 『승리를 갖게 해달라』고 얼굴을 들어 알라신에게 기도했다.
그런 다음 「파이잘」국왕은 나에게 의문을 제기했다. 『대통령각하, 「아사드」대통령은 첫째 바트주의자이고 둘째 알라위파입니다. 어떻게 그와 함께 전쟁을 치러 안전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별항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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