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또 부동산 강력 처방한다는데…] 집값 '내성'만 키울까 벌써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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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교통부 권도엽 차관보는 10일 학계와 현장의 전문가들을 불러 집값 급등 원인과 해법에 관한 아이디어를 구했다. 전.현직 주택정책 담당자들이 모여 내부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정부가 또다시 부동산 대책을 만드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잇따른 대책에도 불구하고 부동산값 오름세가 잡히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책이 나온다면 2003년 10.29 대책 이후 가장 강력한 카드가 동원될 전망이다. 건교부 간부는 "집값 급등세가 수도권으로 빠르게 전파돼 1980년대 후반 폭등 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며 "물(돈)이 몰려오면 물 흐름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키거나 호수(신도시)를 만들어 받아내야지 장벽(규제)만 쌓아서는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대책은 투기 수요를 막고 정부의 공급 확대 의지를 전달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 "부동산 대출 총액제 시급"=현재의 과열된 시장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대책은 부동산시장에 흘러들 돈을 일부 묶는 것이다. 실제 최근 강남권이나 분당에서 기존 주택을 활용해 담보 대출을 받은 뒤 중대형 평형을 추가 구입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는 "90년대 초 일본은 부동산거품(버블)을 잡기 위해 부동산 관련 대출 증가율이 총대출 증가율을 넘지 않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다"며 "만일 대출 제한이 불가피하다면 이 방식이 시장기능에 덜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9일 밝힌 것처럼 특정지역에 대해서만 대출한도를 제한하거나 부동산담보인정비율(LTV)을 낮추는 방안이 나올 수도 있다. 금리인상처럼 경기를 위축시키지 않으면서도 부동산 가격 급등을 잡을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다.

다만 제한 대상이 은행에 국한된다면 상호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으로 부동산 대출이 집중되는 것을 어떻게 막느냐가 숙제로 남는다. 또 "대출 총액 제한은 중앙은행의 수치"라는 한은 안의 시각도 있어 실제 대책에 포함될지 미지수다.

◆ 주택 공급 확대=정부는 이미 2012년까지 수도권 9개 신도시(동탄.판교.김포.파주.이의.시화.별내.삼송.옥정)에 23만여 가구를 짓기로 했다. 추병직 건교부 장관은 이날 서울이나 판교와 같은 주거환경이 좋은 신도시를 계속 건설하겠다고 밝혔으나 신도시 후보지역은 공개하지 않았다. 후보지역이 정해졌더라도 지금 밝히면 주변 집값과 땅값이 치솟는 역효과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기존 도시지역을 대규모로 개발하는 '광역개발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하고 서울시 관계자 등이 참여한 태스크포스를 운영하고 있다. 광역개발은 서울시가 추진하는 뉴타운보다 큰 수백만 평 규모로 기존 도심을 재개발해 도로.공원.학교 등 기반시설을 갖춘 신도시를 서울 안에 세운다는 구상이다.

◆ 대책 악순환 우려=정부 안에서는 집값이 오르면 온갖 규제를 쏟아내는 주택정책을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하느냐는 시각도 있다. 이들은 시장에 맡겨 '풍선'이 터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수도권 남부의 호가 상승은 판교와의 가격비교 기대감에 의한 '키 맞추기'의 성격이 강해 상승의 뿌리가 약하기 때문이다. 또 내년 강남지역에서 주택공급이 늘고, 2008년께부터 신도시 주택이 쏟아져 중장기적으로 공급이 충분하기 때문에 집값은 안정될 것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하지만 문제는 눈 앞의 상황이다. 정부로서는 요즘 빗발치는 비난과 정치적 압력을 감당하기 어려워 보인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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