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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로컬리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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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
이규연 기자 중앙일보 탐사기획국장
이규연
논설위원

사이버 세계는 현실 세계의 확장이다. 한 나라의 역사와 기질, 선호가 그 나라의 인터넷 세상에도 반영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사이버 세계에도 국적과 국경이 존재한다. 로컬리즘(localism)이 지배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이버 세계는 현실 세계의 100% 확장은 아니다. 현실 세계보다 훨씬 더 초(超)국적적, 초국경적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국적을 포기하거나 국경을 넘기 어렵지만 사이버 세계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세계시민’들은 언제든지 손쉽게 국경을 넘고 국적도 바꾼다. 이런 면에서 사이버 세계는 글로벌리즘(globalism)이 지배하는 세상이기도 하다.

 거의 모든 나라의 사이버 세계에서는 로컬리즘과 글로벌리즘이 동거한다. 순수한 로컬리즘, 순수한 글로벌리즘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 나라의 인터넷사업자는 그 나라의 법과 집행에 따른다. 하지만 법과 집행이 국제 관행에 비해 과할 경우 네티즌은 규제가 덜한 다른 나라의 서비스로 서슴없이 바꿔 탄다. 사이버 세계에서는 애국 감수성도 약하다.

 ‘카카오 검열’ 논란은 로컬리즘과 글로벌리즘의 정면충돌 사고다. 카카오의 주 사업장은 대한민국이고, 주 고객도 한국인이다. 당연히 대한민국의 법과 집행에 응해 왔다. 그런데 로컬리즘과 글로벌리즘의 평형을 깨는 충격파가 카카오에 전달됐다. 진원지는 정치권과 공권력이었다. 우리 법무부와 검찰은 느닷없이 “인터넷 모욕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면서 로컬리즘의 발톱을 드러냈다. 이는 글로벌리즘을 자극했다. ‘메신저 실시간 검열’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카카오는 갈 지(之)자 행보를 했다. 해명은 번복됐다. 로컬리즘이 갑자기 좁혀 들어오자 ‘신생 거인’은 어찌할지 몰라 당황했다. 그 사이 정보에 민감한 얼리어답터들은 망명을 감행했다. 카카오가 “검찰의 감청 요청에 응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절박함이 반영된 쇼였다. 법무부나 검찰만큼이나 글로벌리즘의 발톱을 거칠게 내보인 것이다. 카카오를 둘러싸고 로컬리즘과 글로벌리즘은 강한 파열음을 냈다.

 ‘카카오 검열’ 논란을 계기로 국내 사이버 세계에 강하게 드리운 로컬리즘의 암영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국내 인터넷서비스는 실명인증을 해야 이용이 가능하다. 성인서비스 규제(19금 필터링)도 엄격하게 받는다. 게임셧다운 같은 미성년자 보호정책의 영향도 받는다. 반면 구글같이 국내에서 경쟁하는 외국 업체는 이런 규제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게다가 검찰과 법원은 전기통신 압수수색을 남발한다. 국내 업체들은 사이버 세계를 현실 세계와 똑같이 사법영역화하려는 수사기관에 협조해 왔다. 일본에 사업장을 둔 네이버 메신저인 라인의 사례는 흥미롭다. 국내 검찰이 라인을 압수수색하려면 법원에서 영장을 받아 우리 법무부를 통해 일본 법무성에 수사공조를 요청해야 한다. 법무성의 요청을 받은 일본 수사기관은 다시 자국 법원에 영장을 보내야 한다. 이런 단계를 밟는데 2주가량 걸린다. 우리 수사기관이 압수수색을 남발하면 서버나 사업장을 국내에 둔 업체가 직접적인 피해를 보게 된다.

 글로벌리즘이 능사는 아니다. 중국은 사이버 내셔널리즘으로 무장했다. 유럽 같은 선진사회도 ‘잊혀질 권리’를 부각시켜 구글을 견제하려 한다. 우리가 중국 노선을 취하지 않을 것이라면 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의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법원과 수사기관은 사이버 세계를 좀 더 이해해야 한다. 현실 세계의 법전과 관행을 그대로 들이대면 제2의 카카오 검열 논란은 다시 터진다. 그때마다 국내 인터넷서비스는 신뢰를 잃게 된다. 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을 결합한 ‘글로컬’ 법전을 갖추어야 한다. 평형수가 부족해 선박이 침몰하는 참사는 사이버 세계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이규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