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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영화] '녹색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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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감독 : 박철수
주연 : 서정.심지호
등급 : 18세 홈페이지 : (www.greenchair.co.kr)
20자평 : 섹스도, 요리도, 정성이 들어가야 제맛이라는데….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던 히딩크 감독처럼 중견감독 박철수씨는 "나는 그동안 많은 영화를 만들었지만 여전히 목이 마르다"고 말한다. 그가 갈증을 느끼는 대상은 섹스로 완성되는 사랑이다. 5년 전 디지털 영화 '봉자'에서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두 여성의 원초적 교감을 표현했던 감독은 신작 '녹색의자'에서 또 한 번의 파격적 사랑에 도전한다. 32세의 이혼녀 문희(서정)와 19세의 법적 미성년 현(심지호)의 뜨거운 관계를 주목한다.

2000년 말 논란을 일으켰던 사건이 있었다. 바로 30대 유부녀와 10대 고교생의 '역(逆) 원조교제'사건. 법.제도.도덕적 측면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감독은 당시를 돌아보며 법과 관습이라는 사회적 규범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남녀의 사랑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물론 '녹색의자'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현실에선 손가락질당하는 관계 속에도 진실은 엄연히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영화다. 또 그 사랑은 육체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그런 만큼 스크린에 묘사된 정사 장면은 꽤 사실적이다. 자신을 알리고, 또 상대를 확인하는 통로로서 섹스가 도드라진다.

박 감독은 이를 '섹스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한다. 10일 개봉하는 '연애의 목적'이 상대의 페로몬에 끌리는 젊은 남녀의 노골적 심리전이 부각했다면 '녹색의자'는 연분홍 침실에서나 주고받는 밀어(蜜語)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교도소에서 출소한 문희와 그를 마중나온 현의 재회로 시작된다. 그리고 상대의 진실을 몸으로 되새기고, 영원한 사랑을 갈구하는 남녀의 욕망을 드러낸다. 설렁탕.자장면.된장 떡볶이.샌드위치.생선회 등 연이어 노출되는 요리는 그들의 물릴 줄 모르는 탐닉을 상징하는 동시에 성욕과 식욕은 동일한 점에서 출발하고, 또 같은 목표를 향해 질주한다는 암시로 작용한다.

영화의 힘은 두 남녀의 갈등과 오해, 그리고 화해라는 드라마에서 나온다. 또 문희가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치매병원의 노인, 그들에게 잠시 거처를 제공하는 문희의 여자친구, 현을 스토킹하는 젊은 여자아이, 그들의 뒤를 따라다니는 사건 기자 등이 그들의 진정성을 두루 비춘다.

특히 영화 막판 문희의 전 남편, 현의 부모 등 모든 캐릭터들이 한 무대 위에 선 것처럼 등장해 각자 자기 입장에서 사랑을 설명하는 대목은 한 편의 연극 같다. 그 결과 감독의 메시지는 선명하게 정리되지만, 영화가 그토록 '거부했던' 교훈극 비슷하게 방점을 찍으며 막을 내리는 건 어쩐지 어색하다.

사실 어느 누구도 '거리의 여인'에게 함부로 돌을 던질 수 없듯, 사랑이란 단어로 맺어진 남녀를 법과 제도로 간단히 재단할 수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녹색의자'는 올 베를린.선댄스 등 외국의 유수한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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