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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계엄 한달|국민 침묵시키는데엔 성공했지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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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3일로써 한달을 맞은 폴란드의 계엄통치는 초기의 충격에서 벗어나 결정적인 대립의 고비는 넘긴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인 현상의 저류에는 위정자에 대한 국민의 「증오」와 불신, 기술적인 저항 등이 깔려있어 계속 암울하기만 하다.
그러한 조짐들은 군정에 대한 폴란드 국민들의 저항이 「나치 점령시대」와 똑같은 양상을 띠어가고 있는데서 두드러지게 엿보이고 있다. 그 단적인 예로는 우선 매스미디어에 대한 태도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신문을 두고 「사갈(사갈)의 소리」, 방송을 두고 「개짖는 소리」라고 빈정거리는 것이라든지 길가 담벽에 휘갈겨 그린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마크 등은 모두 나치 점령시대에나 있던 일들이다. 저항수단이 한정된 국민들로서는 군정에 대한 최소한의 분풀이인 셈이다.
의정자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그들이 우려했던 사태, 즉 폴란드 국민들의 기술적인 저항이 갖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사실이다. 군정당국은 비록 노동자들의 스트라이크 등 적극적인 저항을 분쇄하기는 했지만 태업·결근·병가와 아울러 감독기관이 적발할 수 없는 교묘한 태업 등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지난 수백년동안 러시아와 독일에 분할 점령되면서 체득한 폴란드 국민의 이러한 레지스탕스 기술은 「천부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르샤바 방송은 계속 『모든 공장이 순조롭게 움직이고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전국의 공장들은 거의 모두가 기껏해야 60∼70%의 가동률을 보이고 있을 정도다.
계엄령 이전부터 제 구실을 못하면 공산당조직은 아예 그 기능을 잃고 일부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3백만을 넘던 당원은 절반 가까이로 줄어들었고 계엄령선포 이후 「솔리다르노시치」에 동조하던 인물들은 『군정의 새로운 과업에 적응 못한다』는 이유로 대량 숙청돼 주지사를 포함 1백명 이상의 간부들이 축출되는 혼란을 겪었다.
이러한 숙청케이스 외에도 군정에 항거, 스스로 탈당하는 사태가 무더기로 발생해 비드고슈치시에서는 찢어발긴 당원증을 도배질하듯 관에 발라 당사 앞에 갖다놓기도 했다는 얘기다. 이때문에 현재의 당을 원전해체하고 새로운 당의 창립을 구상 중이라는 소식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 기본조직으로서 현재 각 지역별로 군정당국에 의해 조직된 「민족구국위원회」가 활용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1천만에 가깝던 「솔리다르노시치」 멤버의 대다수가 이 조직을 외면하고 있어 새로운 당을 조직한다해도 많은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딜레머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정당국자들은 갖가지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며 가톨릭교회의 협조를 모색하고 있으나 그것도 일방적인 기대로 그치고 있다.
군정당국온 유화책으로서 그들에게 협조적인 일부 자유노조원들을 포함한 교회와의 대화를 제의하고 있으나 교회가 계속 계엄령의 해제를 선행조건으로 한 자유노조와의 3자회담을 요구,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군정 초기에 『유혈사태의 방지』만을 호소하며 중재를 자청했던 가톨릭교회는 시간이 가면서 비판적인 태도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9일 「야루젤스키」와 만난 「글렘프」 대주교가 다음날 『살인보다 더 나쁜 것이 양심의 말살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군정당국을 비난한 것은 교회의 굳어지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교회의 태도는 자유노조를 배제하고 교회가 새로운 권력자들과 대화를 가졌다는 인상을 주어 공연한 오해를 피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때문에 교회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이 가망없는 것으로 판단, 그들의 활동을 구금자의 석방노력 및 그들의 가족구호 등 주로 인도문제에만 집중하고 있다.
「야루젤스키」는 무력에 의해 자유노조의 활동을 표면적으로는 침묵시킬 수는 있었지만 한달이 되도록 국민을 「평정」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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