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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진 기자의 맛난 만남]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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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면

▶ 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사랑스러운 자식 이야기를 할 때, 어머니의 입가에는 웃음이 번지게 마련이다.

딸 유나 이야기가 나오자, 나경원 의원의 눈에는 글썽 눈물이 고였다. 김치 그릇으로 옮기던 젓가락을 멈칫하고 가만히 그를 바라본다.

손에 쥔 물컵 위로 애써 시선을 떨군 그의 흰자위가 눈물에 잠겨 뽀얗다.

초등학교 6학년인 유나는 다운증후군 장애를 갖고 있다.

나 의원은 17대 총선 당시 선거 지원 방송에 출연해

"내 아이 같은 아픈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 정치를 시작했다"고 밝혔었다.

"수학여행을 떠났는데, 오늘이 돌아오는 날이네요. 처음에는 한사코 가지 않겠다고 했어요.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활동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걱정이 됐나 봐요. 그런데 떠나기 직전에 마음을 바꾸더군요. 친구들과 선생님이 꼭 함께 가자고 설득했대요." 딸을 배려해주는 선생님과 친구들의 마음이 고맙다고 그제야 미소를 짓는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일반학교에 보내며 담임교사가 힘들지 않을까, 다른 부모들이 반대하지 않을까 항상 마음을 졸여왔다.

유나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라며 콩비지 그릇을 끌어다 준다. 돼지고기 대신 멸치와 새우젓만으로 국물을 내 담백하고 개운하다. 밥 위에 콩비지 한 숟갈을 올려 척척 비벼 보인다. 이렇게 먹어야 맛있단다. "즐겨 찾는 맛있는 식당에서 만나야 한다"는 말을 듣자 이곳을 먼저 떠올렸다. 일요일이면 남편 김재호 판사와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 현조까지 네 식구가 무얼 먹으러 나갈까 즐거운 고민을 한다. 스파게티.캘리포니아롤과 함께 아이들이 손에 꼽는 메뉴가 콩비지와 순두부. 장이 약한 남편도 "이곳 음식을 먹으면 속이 편해진다"며 자주 찾는단다.

주말 외에는 가족들과 밥상에 마주 앉을 시간이 도통 나지 않는다. 조찬 모임이 잦아 아침 7시30분이면 집을 나서야 한다. 국회 상임위원회 활동에 각종 공청회와 간담회, 꼬리를 무는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면 아이들은 이미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딸에게 소원을 묻자 "엄마가 '가끔' 일찍 집에 들어와 함께 저녁을 먹는 것"이라고 대답했을 정도다. 대부분의 끼니를 여의도에서 동료 의원.보좌관들과 해결한다. 자장면이나 삼겹살 같은 기름진 음식을 주로 먹게 된다. "국회의원이 되고부터 여러모로 웰빙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게 됐다"고 말하지만 표정은 밝다.

서울행정법원 판사의 자리에 있던 2002년 이회창 대선 후보의 여성.법률특보로 정계에 입문했다. 한나라당 운영위원과 공천심사위원을 거쳐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이제 좀 익숙해졌느냐고 묻자 "아직 멀었다"고 대답한다. 의원 본연의 업무에는 더없이 만족하지만 '그 외의 것들'이 어렵단다. 동료 초선의원들과 "국민에게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말자"고 다짐했었지만, 당론과 상황을 고려하다 보면 정쟁이 불가피할 때가 많아 안타깝다. 국회 내에 장애아동을 위한 모임을 만들고 장애아 교육을 위한 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는 평가도 한편으론 부담스럽다. 그가 장애인 관련 정책을 내놓으면 의레 딸 유나 이야기가 따라나온다. 혹여 아이가 아픈 것을 정치에 이용한다는 오해를 살까 두렵다는 것이다. 정작 나는 제대로 하고 있나, 내 아이를 돌볼 시간도 없지 않은가 하는 회의가 들 때도 있다.

푸짐하던 두부 요리 그릇이 어느새 비었다. 전라도식 별미인 팥 칼국수를 한 그릇 시켜 나눠 먹기로 했다. 뜨끈하고 걸쭉한 팥물 속에 도톰하고 쫄깃한 면발이 잠겨 나왔다. 시원한 나박김치를 곁들여 한 입 떠넣자 젓가락을 든 손에 진한 팥물이 튄다. 보기와 달리 먹성이 좋다고 하자 "아줌마니까"라며 웃는다. 동네 옷가게 주인이 그를 알아보고 2만원짜리 티셔츠를 1만원에 깎아주었을 때 "국회의원이 좋은 점도 있구나"하고 생각했다며 농담을 한다.

아직 그가 어떤 정치인이라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앞으로 보여 줄 것들이 더 많고,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클 수도 있다. 확실한 건 그가 정치를 하는 이유가 뜬구름 같은 대의명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중한 딸의 미래라는 따뜻한 뿌리를 갖고 있다는 것.

"사법연수원 시절, 유나를 낳았을 때부터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봐야 하지 않느냐'는 권유를 많이 받았어요. 한참을 고민한 끝에 고개를 저었지요. 내 일을 포기하고 아이 곁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반드시 최선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딸에게 당연한 권리를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미래를 선물하기 위해 뛰고 있는 나경원 의원. 그는 분명 행복한 어머니다.

<nadie@joongang.co.kr>

나경원 의원이 소개한 백년옥

국산 콩과 동해에서 길어온 물로 만든 담백한 두부를 맛볼 수 있다.

속초 학사평에서 45년간 순두부를 만든 김영애 할머니에게서

비법을 전수받았단다. 자연식 순두부와 콩비지 백반 외에도

별관에서 판매하는 팥칼국수, 매생이칼국수 등이 유명하다.

서초동 예술의전당 맞은편 풀무원 사옥 옆.

02-523-2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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