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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기만 두드리다 3년 허송 … 황량한 평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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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평창 겨울올림픽이 3년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대회 조직위원회와 정부·지방자치단체가 엇박자를 내며 경기장 신축이 지연되고 있다. 강릉종합운동장 부지에 들어설 경기장 세 곳의 공정률은 고작 3%에 불과하다. [강릉=김식 기자]
우여곡절을 거쳐 최근 평창 겨울올림픽 개·폐회식 장소로 결정된 강원도 평창 대관령면 횡계리 고원 훈련장. 잡초로 뒤덮여 황량하다. [평창=김식 기자]

2018년 2월 9일. 강원도 평창에선 겨울 올림픽이 시작된다. 그렇지만 준비 상황을 보면 올림픽이 제대로 열릴 수 있을 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평창 올림픽 개막까지는 3년4개월도 안 남았는데 아직 경기장 건설을 위한 첫 삽도 뜨지 않은 곳이 있기 때문이다.

 15일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고원 훈련장. 맨땅에 잡초가 자란 축구장은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이 곳은 우여곡절 끝에 평창 올림픽 개·폐회식 장소로 결정됐다. 지난 13일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조양호 평창겨울올림픽 조직위원장 등이 참석한 2차 고위급 간담회에서 개·폐회식 장소로 이곳을 최종 결정했다. 지난달 1차 간담회 때 문화체육관광부가 강릉 종합운동장을 리모델링해 개·폐회식장으로 쓰자고 제안했다가 원안으로 돌아온 것이다.

 평창 대회를 ‘경제적 올림픽’으로 치르겠다는 게 문체부의 방침이다. 그래서 강릉종합운동장을 개·폐회식장으로 활용하자는 안이 나왔다. 그러나 취재진이 강릉종합운동장을 직접 둘러보니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단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변에 아파트와 도로가 있어 간신히 스타디움 공간만 나올 뿐이었다. 출입문과 성화가 들어설 자리는 물론 올림픽 플라자 등의 부대시설이 들어설 공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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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4개월 앞으로 다가온 평창 올림픽이 길을 잃었다. ‘경제적 올림픽’을 위해 갑론을박을 벌이다가 ‘경쟁력 올림픽’이 요원해지고 있다. 개·폐회식장 변경 논란은 평창올림픽 준비의 문제점을 압축하고 있다.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끝난 스타디움 계획을 백지화하려다 명분도 실리도 얻지 못했다. 먼저 ‘개·폐회식은 반드시 주최 도시에서 열려야 한다’는 올림픽헌장 34조를 위반했다. 이 과정에서 평창·강릉의 지자체와 주민들이 갈등만 부추긴 꼴이 됐다. 일부 평창 주민들은 반대투쟁위원회를 결성해 개최권 반납을 주장하기도 했다.

 개·폐회식장 외 경기장 건설 총 사업비로는 총 6993억원(2011년 유치 시점 기준)이 책정돼 있다. 문체부는 사업비의 20%를 줄이려 했지만 절감안을 찾지 못한 채 시간만 허비했다.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했을 때 사업비는 8200억원 선까지 올라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강릉종합운동장 부지에 들어설 경기장이다. 평창 올림픽에는 개·폐회식 장소 이외에 총 13개 경기장이 필요한데 이 가운데 6개는 신축해야 한다. 그런데 3개 경기장은 최근에서야 공사를 시작했고,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은 사후활용 문제로 첫 삽조차 뜨지 못했다. 강원도와 조직위는 스피드 경기장을 워터파크로 활용하는 방안을 내놨지만 문체부가 “ 강원지역에 워터파크가 7개나 된다”며 경기장 재설계를 지시한 것이다.

 강원도 관계자는 “새로 설계를 하면 1년이 걸리고, 공사기간은 30개월이 필요하다”면서 “그렇다면 아무리 빨라도 대회 직전에야 완공된다는 얘기인데 이래선 국제적인 망신을 당할 판이다. 모든 올림픽 경기장은 대회 1년 전 시범대회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피드 경기장을 제외한 빙상 3개 경기장은 7월17일 착공했다. 현장에는 포크레인과 인부가 투입돼 초기 공사가 한창이다. 현재 공정률은 고작 3%. 예정보다 수개월 늦었지만 2017년 2월 완공을 목표로 공사를 진행 중이다.

 김상표 조직위 시설부위원장은 “신축 경기장의 공사 기한을 맞추기 급급하다. 최대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강원도가 추천하는 시설 전문가와 문체부 추천 전문가가 모여 회의를 열 것”이라며 “기본 계획을 크게 흔들지 않는 선에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스피드 경기장은 수의계약을 통해 착공을 서두르는 방법이 거론되고 있지만 법적 문제가 불거질 소지가 있다. 최문식 조직위 시설부장은 “공사기간을 아무리 단축해도 22개월은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야간 공사를 하면 겨우 맞출 순 있겠지만 건설 비용이 올라가는 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평창 올림픽의 준비는 인천 아시안게임 준비과정과 크게 유사하다. 인천 아시안게임은 2007년 안상수 전 시장이 대회를 유치했고, 2010년 취임한 송영길 전 시장이 대회 준비를 떠맡았다. 정작 개회식에 나선 건 지난 7월 취임한 유정복 시장이었다. 시장이 바뀌다 보니 일관성 있고 효율적인 대회 준비를 하기 어려웠다는 지적이다.

  2011년 평창올림픽 유치 당시 조직위원장은 김진선 전 강원도 지사가 맡았다. 현재는 최문순 지사와 지난 7월 취임한 조양호 조직위원장이 대회 준비를 책임지고 있다. 체육계 관계자는 “인천 조직위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신임 조직위원장 중심으로 준비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무조건 건설 예산을 늘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만 비용에 대한 축소지향적 시각도 바뀔 필요가 있다. 스포츠 평론가 정윤수(47)씨는 “올림픽을 경제적 측면으로 접근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평창 올림픽을 통해 스포츠·문화 콘텐트를 만들고, 마케팅을 통해 수익을 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면서 “평창이 인천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올림픽을 통해 강원도와 평창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진다’는 인식을 시민들에게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평창=김식·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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