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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을 재검토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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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김영욱
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게가 연못가를 기어가고 있다. 근데 옆으로 기는 게 아니라 바로 가고 있지 않은가. 희한한 광경에 사람들이 모여 시끄럽게 떠들었다. 그러자 이 게가 한마디 했다. “그래, 나 취했다.”

 이 게의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등 보편적 복지를 재검토하자고 주장할 거라서다. 보수와 진보, 양측이 동의할 수 있는 얘기부터 먼저 하자. 우리 경제의 화두가 두 가지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게다. 저성장과 양극화 문제다. 저성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키워드는 잠재성장률의 저하다. 게다가 우리는 최근 3년간 이렇게 낮아진 잠재성장률에도 못 미치는 성장을 했다. 양극화도 악화되는 추세다. 최근 몇 년간 지니계수 등 불평등 지수가 다소 좋아지긴 했다. 하지만 지표에 대한 불신이 깊은 데다, 설령 이 지표가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해도 2000년대 이후 악화되고 있는 추세임에는 변함이 없다. 양극화를 개선하기 위한 복지지출 증가는 불가피하다는 데 양측이 동의하는 이유다.

 복지지출에 대한 우려도 양측이 비슷하다. 선진국에 비하면 복지지출은 턱없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지출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니 말이다. 문제는 지출의 증가속도다. 1999년 이후 복지지출 증가율이 OECD 회원국 평균치의 두 배 가까이 된다. 이 속도로 가면 조만간 국가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질 거라는 건 양측이 공감하지 싶다. 복지지출의 재원 마련에 대한 걱정도 동일하다. 어디서 조달할지의 방안은 생각이 크게 다르긴 하다. 하지만 세금을 늘리자니 조세 저항이, 국가채무를 늘리자니 미래세대의 부담이 커지는 걸 우려하는 건 똑같다. 증세를 택할 경우 어느 세금을 손댈지 고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진보는 부자 증세를 줄기차게 얘기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전체 근로자의 5%가 소득세 70%를 내고, 전체 기업의 5%가 법인세 95%를 내기 때문이다. 부자증세가 진보에게도 부담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저성장과 양극화가 모순된다는 인식도 비슷하다. 분배를 개선하려면 성장 문제가, 저성장을 극복하려면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이 걸린다. 진보는 선(先) 분배 후(後) 성장, 보수는 선 성장 후 분배로 확연히 갈리는 이유다. 그렇더라도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 역시 있다. 프로그램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성장에 도움이 되는 복지가 가능하다는 인식 말이다. 성장 친화적 복지가 그것이다.

 자, 이제 결론이다. 이렇게 정리하다 보면 진보와 보수, 양측이 동의할 수 있는 복지의 큰 방향이 나온다. 가장 시급한 복지는 저소득층 지원이다. 생계를 돕고 ‘희망의 사다리’를 놓아주는 복지 얘기다. 집이 가난해서 공부를 할 수 없는 학생, 쪽방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노인들에 대한 지원 말이다. 그 다음에 써야 할 곳은 성장을 촉진하는 복지다. 취업하지 못한 청년들을 재교육시키고 실직자에게 전직 훈련을 시켜 재취업을 시키는 복지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생산적 복지 얘기다. 이렇게 보면 부자에게도 똑같은 혜택을 주는 보편적 복지는 순위가 한참 밀려날 수밖에 없다.

 오해 말기 바란다. 보편적 복지나 복지국가를 하지 말자는 건 아니다.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거다. 재원 마련이 힘든 현실을 감안하자는 거다. 저성장이 고착될 가능성이 크기에 재원 문제는 지금보다 더 심각해질 게 자명하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을 둘러싼 논란이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걸로 보는 이유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이 돈으로 선별적 복지와 성장 친화적 복지를 다지는 게 옳지 싶다. 한 달에 수백만원의 보육비를 쓰는 부잣집에 최대 39만4000원의 보육료 지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죽했으면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혜택을 받은 집 중 무려 92%가 가계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응답했겠나. 이럴 바엔 저소득층 자녀들이 열심히 하면 돈 걱정 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게 더 낫다. 말을 빙빙 돌려 그렇지 복지에도 우선순위를 정하자는 얘기다. 비용 대비 효과가 큰 곳부터 먼저 하자. 그러려면 무상급식·무상보육부터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김영욱 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