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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관 교수의 명소명인 기행 ④ 논산 개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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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충남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 있는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의 특별한 은총을 입은 사찰이다. 왕건은 936년 일리천(현 경북 구미시 인동면) 전투에서 후백제군을 크게 무찔러 후삼국 통일의 주도권을 잡았다. 이 여세를 몰아 천호산 아래 황산벌(현 논산시 연산면)에서 신검이 이끄는 잔적을 소탕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다.

고려왕조의 기상이 느껴지는 개태사 석불입상(위)과 극락대보전.

왕건은 940년 고려군의 최후 승리를 진두지휘했던 바로 그 자리에 개태사를 세워 국찰로 삼았다. 개태사에 들어서면 아미타 삼존석불인 개태사지 석불입상(보물 제219호)을 만날 수 있다. 본존불 몸체는 법의는 한쪽 어깨만 둘렀고, 손 모양은 중생을 보호해 모든 두려움을 물리쳐 준다는 시무외인(施無畏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좌우에 있는 협시보살은 같은 수법으로 다듬어졌으나 본존불보다 정교하게 표현됐다. 무엇보다 조각의 선이 굵고 강인해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왕조의 굳건한 기상이 느껴진다.

 개태사지에 도착하면 후삼국 통일을 기념해 세웠다는 개태사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데 직사각형 석조건물 초석과 기단 석재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석조는 커다란 돌을 넓게 파서 물을 받아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물통으로, 의식을 준비하거나 마친 뒤에 사용된 그릇을 씻는 용도다. 석조와 함께 개태사 본래의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철확(철솥)은 개태사 경내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이 밖에 개태사지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청동반자와 금동대탑(국보 제213호) 등이 있다.

 태조 왕건은 뛰어난 친화력으로 지방 호족들과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으며 지방 호족을 무력으로 다스리기보다 유화책으로 위기상황을 돌파하는 현실적인 대안을 선택했다. 새로운 왕조 건설에 따른 호족들의 불안심리를 꿰뚫고 있던 왕건은 중앙집권적인 강력한 왕권국가를 무리하게 추진하기보다 신왕조의 기틀을 공고히 하는 데 주력했다. 그의 선택은 호족들로부터 큰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고, 호족 연합체 형태의 새로운 정치실험이 전개됐다.

 그는 호족들을 규합하는 상징적 조치로 그들의 딸들을 왕비로 받아들이는 신뢰 정치를 펼쳤다. 부인 29명으로부터 왕자 25명과 공주 9명을 낳았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29명의 공식적인 부인을 둔 권력자를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강력한 사병과 재력을 겸비하고 있던 지방 호족들을 규합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아쉽게도 왕건 사후 배다른 왕자들 간 권력암투는 예견된 수순이었다.

 지방 호족들의 권력이 막강했던 신왕조는 949년 즉위한 광종 대에 들어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광종은 지방 호족들의 세력을 무력화시키면서 강력한 왕권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마침내 고려왕조는 건국 후 50여 년 만에 중앙집권적인 왕권국가로 발돋움했다.

 광종은 호족들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과거제를 도입해 전국 각지의 유능한 인재들을 등용했고, 노비안검법을 통해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들을 평민으로 복귀시켜 호족들의 경제력이 자연스럽게 약화되는 정책을 전개했다. 이로써 태조 왕건이 신왕조를 세우며 염원했던 중앙집권적인 고려의 통치기반은 완성됐다.

 광종의 개혁작업이 지방 호족들의 저항을 이겨내지 못했다면 고려왕조는 존립 기반 자체가 뿌리째 흔들리는 위태로운 상황을 맞았을 것이다. 리더가 해야 하는 의사결정 과정의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지 되새겨보게 하는 역사적 교훈이다. 리더는 감정에 치우치는 의사결정의 유혹을 냉정하게 뿌리치면서 심사숙고한 뒤 다양한 정책 대안들을 마련해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고, 시의적절한 때에 행동으로 옮겨야만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머뭇거리거나 의사결정 후 또다시 장고하는 전략적 판단은 조직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크다.

 수차례 전란을 겪으면서 파괴된 개태사는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삼국시대 이후 한민족의 주체적인 역량으로 건국된 고려왕조를 기념해 건립된 개태사가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일은 고찰 복원을 뛰어넘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급변하는 21세기 국제정세 속에서 통일을 준비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전략은 후삼국시대 초기 상황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주적 역량으로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의 리더십은 남북통일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영관 교수

1964년 충남 아산 출생. 한양대 관광학과를 졸업하고 기업윤리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코넬대 호텔스쿨 교환교수, 국제관광학회장을 지냈다. 현재 순천향대 관광경영학과 교수. 주요 저서로 『조선의 리더십을 탐하라』 『스펙트럼 리더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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