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브라질 무술 전파하는 미국인 한국문학 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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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98년 봄, 연세대 체육관에 한 외국인이 나타나 홀로 무술 동작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요란한 무늬의 도복에 낯선 동작들-. 마침 옆에서 훈련하고 있던 유도부원들은 강렬한 호기심을 느꼈다. '저거 뭐야' 하는 의문은 결국 한판 대결로 이어졌다. 호기심은 금세 충격으로 바뀌었다. 그가 구사하는 조르기.꺾기 등은 유도와 비슷하면서도 몹시 실전적이어서 한번 걸려들면 치명적인 부상을 각오해야 했다.

이 무술이 최근 이종격투기 붐을 타고 한국에도 알려진 '브라질리언 쥬짓수(Brazilian Jiu Jitsu)'다. 브라질 유술 혹은 BJJ라고도 한다. 그리고 그 외국인은 이 무술을 한국에 전파한 하버드대 박사(한국문학 전공) 출신의 존 프랭클(38.이화여대 교수)이다.

"첫 대련이 있은 뒤 한 수 지도를 청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지요. 저도 연습할 상대가 필요해 클럽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단체 '서울BJJ'는 한국에서 브라질리언 쥬짓수를 알리는 메카가 됐다.

그는 현재 그의 제자가 서울 북아현동에 차린 도장(이희성 BJJ아카데미, www.bjj.co.kr)에서 이 무술을 가르치고 있다. 대학교수라는 직업 때문에 사범으로 나서지는 못하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씩은 수련생들을 직접 지도한다. 지금까지 그가 가르친 제자는 약 500명.

최근엔 외국에서 직접 이 무술을 배워온 사람들이 도장을 차려 연마자들이 늘었다. 지난달엔 전국대회까지 열렸다.

"브라질리언 쥬짓수의 모태는 일본 유도입니다. 그러나 올림픽 종목의 스포츠가 된 유도와는 달리 이 무술은 브라질에 전해진 뒤 실전에 유효한 기술만 더욱 발전시켜 이제는 유도와 완전히 다른 무술이 됐습니다."

'실전적'이라는 점 때문인지 브라질리언 쥬짓수를 연마하다 이종격투기로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국계인 데니스 강도 그랬고, 프랭클의 스승인 힉슨 그레이시도 그랬다. 그레이시는 이종격투기 데뷔 이후 400연승(무패)이라는 신화적 기록을 세웠다.

94년 이 무술을 배우기 시작한 프랭클은 2003년 보스턴 도장에서 최고 단계인 검은 띠를 땄다. 미국 국내 대회에서 우승도 했고, 비디오 테이프 교재를 내기도 했다.

프랭클은 U.C.버클리 재학 시절 한국어를 배웠다. 모르는 말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재미에 빠져 결국 한국문학을 전공할 결심까지 하게 됐다. 한국으로 유학해 93년 연세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에 이 무술을 전한 것은 박사과정을 마치고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논문을 준비할 때였다.

지난해 10월 이화여대 동시통역대학원 조교수로 임용돼 한국에 머물고 있는 그는 이어령씨의 저서 '매화'를 영역하는 등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박완서 단편집' '김정한 단편집'등의 번역소설집도 냈다.

글=왕희수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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