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원명은 유행의 뜻 담긴「시체 조」|금기창 교수,「시조개념」새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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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 민족고유의「겨레 시」, 시조에 대한 범국민적인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시조의 개념에 대한 새로운 학설이 나와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금기창 교수(충남대)는『시조의 개념에 대하여』란 논문을 통해 시조는「당대의 새로운 유행 조」라는 의식에서 출발하여 「시체 조」→「시체인조」→「시인 조」의 형태로 변전되면서 사용되어 오다가 현재의 「시조」란 명칭이 성립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어국문학회간『국어국문학』연 집).
그간 시조라는 말은 이미 여러 학자들이 그 명칭의 유래와 원명에 관해서 언급한 바 있다. 이병기 양주동 김기동 이태극 김동욱 박을수 이기문 황충기씨 등 이 그 대표적인 학자들.
일찍이 이병기 박사는 그의 저『시조의 개선과 창작』(1957년)에서 시조의 명칭은 숙종 영조 무렵부터 사용되었던 창곡상의 명칭으로서 원명은「시절가」였으며 시조는「시절가 조」의 약칭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금 교수는 삼장륙구의 단가를 내용상 주제별로 분류하면 시절가(유)·화목가(유)·이별가(유)등 많은 종류가 있으므로 문학상으로「시절가」는 수많은 단가의 주제별 종류의 통칭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시조는 시절가와 비 시절가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는 것.
또 단가 창(시조창)의 전성기에는 시조창이라면 시절가를 가창 하는 것이 상례였으므로 『시조는 또한 시절가』라는 말이 있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단가 창(시조창)의 입장에서 본 순조∼철종 연간의 시조(단가)의 모습일 뿐, 「시절가」가 시조의 원명은 될 수 없다고 본다.
숙종 때 이세춘이 성종 이래의 진부한 단가 창곡을 지양하고 새로운 창곡과 창법을 창안하여 세상에 퍼뜨리자 이 창곡과 창법이 민중의 기호에 맞아 평민들 사이에 유행하기 시작하였을 무렵, 이 단가의「새로운 유행 조」를 당대의 평민들 또한「시절이 가조」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금 교수는 설명한다. 왜냐하면「시절 가 조」의「시절가」에는「시절을 읊은 노래」란 의미는 있지만 「당대의 새로운 유행」을 뜻하는 의미는 없기 때문-.
금 교수에 따르면, 문헌상 단가라는 말이 처음으로 보이는 것은『조선왕조실록』권 3백22 성종 11년 10월 정극인의 상소문-.
이후 영조 대까지 시조 명칭은 단지 창곡 상의 명칭이었으며 삼장륙구 형식을 지닌 45자 내외의「우리 말 노래」에 대해서는 아직도 단가란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숙종 대에는 단가 창곡(가곡)에 있어서의 시조와 금보(거문고악보)에 있어서의 시조가 각각 따로 있었으며 시조 명칭은「당대의 새로운 유행 조」를 통칭하는 명칭으로 쓰여졌다.
단가 창곡에서의 시조와 금 보에서의 시조는 숙종 말엽 거의 같은 시대에 이루어진 악곡으로서 이세춘에서 시작된 시조는 우리의 정감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호흡과 뉘앙스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한민족의 상하가 모두 참여한 민중가요로 발전한 반면, 김성기에서 시작된 금 보에서의 시조(어진 유제)는 귀족적이어서 별로 유행을 보지 못했고 오늘날엔 전해진 것이 없다.
숙종 대에서 영조·정조대에 이르는 시기는 군주국가가 내포하고 있는 모순과 사회경제적 발전에 의해서 봉건사회가 붕괴되어 가던 시기-.
영조 대에 접어들자 단가는 양반의 손에서 서민의 손으로 넘어가 민중의 가요로서 크게 유행했다.
당시까지 문학상의 명칭이었던 단가라는 말은 점차 평민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고 음악상의 명칭이었던 시조라는 말만이 급속도로 보급되어 드디어 시조라는 말이 단가라는 말을 대신하기에 이르렀다. 이때가 정조대 중엽-.
가객 이세춘이「새로운 가곡」을 세상에 퍼뜨렸을 때 그「새 곡조」가 대중의 마음에 맞아서 유행하기 시작했을 무렵 평민들은 이「새 곡조」를 예부 터 전승해 오던 진부한 단가 창곡 과는 다른「당대의 새로운 유행 조」라는 의식에서「시체 조」라고 불렀다고 주장한 금교수는, 따라서「시체조」즉 시조라는 말은 어떤 특정한 인물에 의해서 부여된 명칭이 아니라 서민들 사이에 자연발생적으로 가꾸어져 자라난 서민의 말이며 따라서 시조라는 말속에는 어딘지 모르게 서민적인 풍취가 스며 있다고 덧붙인다. <이근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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