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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폴란드를 거울삼아 본 그 모순과 허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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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1년 반 동안의 폴란드는 전세계에『공산주의는 실패한다』는 귀중한 교훈 한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경제를 일으켜 국민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수단으로서의 공산주의는 실패한 것이다. 폴란드가 경험하고 있는 사회적 무질서와 경제적 파탄으로 인한 문제는 서방의 민주주의 산업국가들이 당하고 있는 문제보다 한층 더 뿌리가 깊고 심각하다. 폴란드에서는 공산주의라는 체제가 기능수행에 실패했다 기보다는 체제 자체 내에 실패의 요인이 내재 돼 있다. 공산주의는 공통 선을 추구한다면서 인간의 상상력, 자발적인 행위 또는 자기개선 본성 같은 것을 모두 희생시킨다. 그 결과 공산주의 사회는 모순 투 성이 이다. 예컨대 결핍 속의 낭비, 엄격한 통제와 희망 없는 비능률, 나태와 광신, 냉소와 독단, 그리고 아 현과 난폭 같은 모순이 공존한다. 이러한 구조적인 모순과 결함은 오늘날 폴란드가 당면하고 있는 것과 같은 재앙을 낳게 마련이다.
폴란드에서는 1948년 공산당과 사회당이 합쳐 폴란드연합노동자당(UWP)이 결성됐다. 폴란드 노동자들은 단결했는데 그들은 공산주의로 결속된 것은 아니었다. 폴란드의 노동자들은 공산주의체계가 그들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킨 적도 없었고. 충족시키지도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아래 뭉쳤다. 공산주의 체제는 그들에게 빵과 직업을 주거나 생활의 행복과 장래에 대한 희망도 주지 못하고 있다.
폴란드사람들은 공산주의보다는 좀더 나은 그 무엇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15억 인구를 지배>
폴란드에서 공산주의가 실패한 것은 그 영향이 엄청나게 큰 것으로 소련을 포함한 공산국가의 종말의 시작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5월「레이건」미대통령은 노터데임 대학에서 행한 연설에서 『서방은 공산주의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이를 극복할 것이다. 지금 그 마지막 페이지가 씌어지고 있는 인류역사의 기괴한 장으로서 이를 무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소련 식 공산주의는 기본적으로 국민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워 주고, 건강과 안전 그리고 행복의 추구를 보장해 주는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소련 식 공산주의는 권력의 장악·유지·연장을 위한 제도일 뿐이다. 그것은 국가권력을 뜻하며 더욱 제한적으로는 몇몇 엘리트의 권력을 의미한다.
이론적으로는 공산주의의 사회적·정치적 독트린은 경제적인 목표와 수단에 기초하고 있다. 공산주의의 주된 목표는 그 사회가 생산하는 부의 공평한 분배에 둔다. 이를 위한 수단으로서 개인이나 기업보다는 국가가 통제경제의 형태로 모든 생산과 분배를 책임진다는 것이다.
공산주의의 창시자들과 오늘날의 신봉자들은 경제적인 조건이 사회적 관계와 정치제도를 결정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따라서 경제적인 측면이 사회정책결정에 선행되어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정치적 상위구조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상위구조자체가 되고 말았다. 공산주의는 유럽·아시아·아프리카·중동·중남미 등 세계 각처에서 약15억의 인구를 지배하고 있다. 인구수로 보면 세계인구의 3분의 1이고 지역적으로는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2차대전 이래 15개 국가가 공산화됐다.
최근 수년사이에 세이셸·남 예덴·이디오피아·앙골라·니카라과가 공산화됐을 때「닉슨」전 미국대통령은『3차 대전은 이미 시작됐으며 저들이 승리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마르크스」와「엥겔스」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19세기에 생각했던 이념은 20세기초에 들어와 동쪽 봉건사회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이 생각했던 혁명을 산업혁명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했는데 러시아는 당시, 산업혁명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던「차르」시대였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마르크스」가 당초 생각했던, 그러니까 혁명은 산업화된 자본주의 국가로부터 발생한다는 가설과는 전혀 다른 경제적으로 피폐되어 있고 사회적으로 혼란 되고 부패한 사회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소비에트의 새로운 국가건설은 4가지의 상호 연관된 통치기술로 시작됐다. 절대권위의 중앙집권제, 관료주의, 폭력 그리고 군대가 그것들이다. 「레닌」의 전쟁장관이었던「레온·트로츠키」는『공산당의 독재는 여러 가지 형태의 폭력에 의지해서 유지될 수 있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폭력은 두 가지 형태로 제도화되었는데 하나는 국내적으로 소비에트체제에 도전하는 위협에 대처하는 비밀경찰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문제를 해결하는 적군이 바로 그것이다.
독재와 관료주의 그리고 폭력과 군대에 의한 통치는「요시프·스탈린」시대에 들어와 전성기를 구가했다.
「스탈린」은 당을 그의 뜻을 국가정책에 반영시키는 기구로 전락시켜 버렸고 비밀경찰을 국가 안의 국가로 존재하는 권력기관으로 만들었다. 그는 적어도 2천만 명을 국가의 적, 인민의 적, 계급의 적, 모반자라는 등의 각종 이름으로 처형해 버렸다. 「스탈린」의 후계자들은「스탈린」식의 피의 숙청을 멀리하고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해 왔다. 그러나 공산당과 국가에 대한「레닌」과「스탈린」주의자들의 개념은 그대로 전승해 내려왔다.

<제3세계도 외면>
그 결과 당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는 관료주의적 국가사회주의가 대두하게 되었다. 권력의 독점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겨졌으며 당 지도자들의 자식들에겐 최고의 교육과 가장 좋은 직장이 보장되었다.
소련지도자들은「보나파르트」주의를 조심스럽게 매도해 왔는데「보나파르트」주의는 군이 정치권력을 넘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총 대신 투표함을 내세워 정권을 얻으려 했던 지역에서는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서구제국에서 선거를 통해 대중의 지지를 얻고 의회를 장악하려던 유러커뮤니즘은 수년 전만 해도 우익진영에는 공포의 유령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서구에서 가장 강력한 이탈리아 공산당은 76년 총 선을 피크로 점점 약화되고 있으며 프랑스공산당은 지난해 여름의 총 선에서 의석의 반 가까이 를 잃었다.
포르투갈은 75년『비바·스탈린』(「스탈린」만세) 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소수 극좌파들에 정권을 빼앗길 뻔 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 우익독재자들의 사망은 정치적 공백을 느린 극좌파들의 준 동을 야기 시켰다. 그러나 온건한 민주정당들이 스스로를 강화하고 또 유권자들이 선거권을 행사함으로써 공산주의자들은 맥을 쓰지 못하게 됐다.
유러커뮤니즘은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의 그것에 비교하면 크게 변색되었다. 이탈리아 공산당 만해도 소련의「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간섭과 침략으로 규정지어 2년 전부터는 레닌주의자라는 말을 쓰지 않게 됐다.
제3세계에 대한 공산주의의 침투는 오히려 시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제3세계의 개발도상국가들은 진보와 해방이라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약속을 믿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배웠다.
쿠바의「카스트로」는 자기 방식대로의 대중혁명으로 정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그는 게릴라로서 또 아바나를 장악한 뒤에도 그의 이데올로기를 숨겨야 한다는 원칙을 증명해 보였다.
칠레의「아옌데」는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았었다. 미국의 지원으로 성공한 쿠테타로 쫒겨 나지 않았다면「아옌데」는「마르크스」 주의의 대통령도 선거에 의해 물러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뻔 했다.
공산주의자들은 점차 증대되는 자체내의 분열과 싸우고 있다.
중공의 지원을 받는「폴·프트」세력과 베트남의「렝·삼린」괴뢰정권 간의 싸움은 태국을 괴롭히고 있다. 중·월간의 새로운 다툼도 모든 동남아국가들을 위협할 수 있다.
미 국가안보회의 고문인「파이프스」씨는「브레즈네프」사후의 크렘린 지도체제가 다음 두 가지 중 하나의 길로 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 하나는 소련이 군사력을 세계곳곳에 더욱 증강시켜 외교정책의 성공을 모색함으로써 내정의 실패를 보강하려 시도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정치 국이 결국 소련경제를 구하기 위해 그들의 관심과 자원의 사용을 국내로 돌릴 실용적 민주주의자들에 의해 지배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사기업부분 인정>
공산주의경제인 통제경제 역시 침체 일로 를 걷고 있다. 파리대학교 사회주의경제연구소장「마리·라빈」교수는『1965년 이후 어떤 공산주의 나라도 경제개발5개년 계획의 예정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다음기간의 경제계획은 더욱 암담해지고 있다.
시장경제를 강조하고 이윤동기를 유도하는 헝가리의 신 경제 메커니즘은 중앙 집권적 국가계획의 부분적 와해를 의미한다.
현재 중공지도자들도 최소한의 사기업인정과 사 농에 대한 이온보장 등 비밀자본주의의 도입으로 경제를 근대화하려 애쓰고 있다.
헝가리와 중공이 실제로 공산주의를 이탈하고 있으면서도 공산주의를 고수하는 것처럼 거짓을 꾸미는데 반해 폴란드에서는 이마저 거부당하고 있다.
그다니스크 자유노조간부「샤브웨프스키」는『모든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원인은 견제와 균형이 없는 오직 하나의 당인 공산당만이 존재해 왔다는데 있다』고 말하고 있다.
공산주의국가엔 무력 외에 지지기반이 거의 없다. 선거를 통해 대중의 지지를 얻고 정권을 장악하려던 유러커뮤니즘도 퇴색하고 있다. 이탈리아·프랑스·포르투갈·스페인이 모두 마찬가지다.
24년 전 미국에 망명한 유고슬라비아 부통령「밀로반·질라스」는 말한다. 『현재의 폴란드사태에서 목격하듯 폴란드정부는 당의 실정을 사실상 인정해 군대를 끌어들임으로써 공산당의 권위에 종말을 가져왔다.』 <타임지·1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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