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개발 역풍] 中. 판교발 역풍은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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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교발 집값 상승으로 분당과 용인 일대에서는 아파트 매물이 사라졌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실 관계자가 매물을 구한다는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박종근 기자

판교 주변 집값 급등에는 여러 원인이 얽혀 있다. 판교와 서울 강남권의 넓은 평수 공급이 줄고, 용인 등지의 교통 여건이 나아지는 것도 한 이유지만 최근의 폭등세를 설명하기엔 설득력이 약하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에 떠도는 풍부한 부동자금과 판교 신도시 기대감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양도소득세 부담 때문에 팔려고 하지 않아 매물이 부족한 것도 또 다른 이유다.

◆ 팽배한 기대감에 안 팔아=성남시 분당의 집값은 1월 초까지만 해도 잠잠했다. 6억원을 밑도는 50평형대 급매물도 있었다. 그러나 2월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판교 신도시의 예상 분양가 때문이다. 판교의 40평형대 이상 분양가가 평당 1500만~2000만원에 책정될 것이란 소문이 주택업계에서 흘러나오자 집 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였다. 급기야 호가가 한 달 만에 1억원 정도 뛰더니 지금은 분당 50평형의 호가가 10억원까지 치솟았다. 용인.평촌.과천.의왕.안양 등으로 오름세가 퍼졌다.

판교라는 특급 주거지가 건설되면 주변 시장이 덕을 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매물이 들어가면서 호가가 뛰고 있다는 것이다. 투자자문사 저스트알 김우희 상무는 "올 들어 판교 주변에서 주거 여건의 변화가 없었는데도 판교의 예상 분양가.청약경쟁률이 나올 때마다 기대감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집값이 크게 올랐다"고 풀이했다.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G공인 관계자는 "11월로 예정된 판교 분양 전까지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분당.용인 집 주인들의 심리를 지배하고 있다"고 전했다.

매매가와 달리 전세가는 큰 변동이 없다. 전세가는 기대감이 아닌 실제 수요가 있어야 움직인다. 분당 시범단지 한양 60평형의 호가는 올 초 6억8000만~7억7000만원에서 최근 9억~10억원으로 뛰었지만 전셋값은 2억8000만~3억원에 머물고 있다. 하나경제연구소 양철원 연구위원은 "매매값과 전셋값이 동반 상승하지 않은 것은 실거래가 받쳐주기보다 매물 회수에 따른 호가 상승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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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넘치는 돈과 개발 재료가 견인=부동산 시장을 기웃거리던 투기성 자금이 판교라는 대형 호재가 있는 수도권 남부를 활동지로 선택했다고 업계는 본다. 딜로이트 FAS 부동산팀 임승옥 전무는 "판교 주변의 시장 상황은 악재엔 둔감하고, 호재는 확대 해석되는 전형적인 유동성 장세의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풀린 판교의 토지 보상금 2조4787억원 가운데 일부가 판교 주변을 맴돌았다. 용인시 상현동 J공인 관계자는 "판교 보상금을 받은 원주민 중 분당.용인의 50평형 이상 아파트를 사들인 사람이 많다"고 귀띔했다.

서울~용인 고속도로 착공, 분당선 연장선 죽전역 개통 등의 개발 재료가 나온 것도 판교 주변 집값 상승에 기름을 부었다. KTB자산운용 안홍빈 부동산본부장은 "도로 착공 등은 예고된 계획이었지만 이미 열기가 달아오른 판교 주변에서 새삼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 양도세 부담에 못 팔아=판교 주변은 대부분 주택투기지역이다. 투기지역으로 묶이면 집을 팔 때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양도세를 내야 한다. 차익을 챙기려 해도 세금으로 수억원을 내고 나면 이득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매물이 많지 않아 호가 상승을 부채질한다.

분당구 정자동, 용인시 죽전.신봉동 등 새로 입주한 아파트가 많은 곳일수록 이런 현상이 뚜렷하다. 소유권 이전 등기 후 1년이 안 돼 팔면 오른 값의 50%를 양도세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정자동 테크노공인 박윤제 사장은 "강남 등으로 이사할 계획을 세웠다가도 양도세를 내고 나면 돈이 줄기 때문에 '눌러 앉자'며 매물을 거둬들이는 집주인이 꽤 많다"고 전했다. 주용철 세무사는 "양도세제가 바뀔 때까지 버텨보자며 매도 계획을 보류하는 이들도 있고, 판다 해도 양도세를 매매가에 얹어 내놓기 때문에 호가가 치솟는 것"이라고 말했다.

◆ 어떻게 될까=대다수 전문가는 판교 분양 전까지는 주변 집값 불안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 집값 상승폭이 지나치긴 하지만 현재로선 달아오른 기대 심리를 잠재울 방책이 많지 않아서다.

다만 이달 말 판교 택지 입찰이 끝나 넓은 평수 분양가가 평당 1500만원 이하에 결정되면 과열 분위기가 다소 식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판교 기대감이 주변 집값에 이미 반영됐다는 이유에서다. 중대형 아파트의 경우 분당은 평당 2000만(일반아파트)~2500만원(주상복합아파트)을 돌파했고, 용인도 1000만~1500만원으로 올라 있다.

한국자산신탁 신상갑 팀장은 "판교 분양 후에는 아파트 시장의 화제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 '판교 약발'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도 "판교는 분양권 전매가 안 돼 분양 후엔 시세 움직임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판교와의 가격 비교나 기대감만으로 주변 집값이 계속 오르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 특별취재팀

성종수.허귀식.김원배.서미숙 기자 <rtop@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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