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없는 전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돌(석)과 미생물과 우주. 이 둘은 21세기의 문을 두드리는 문명의 총아들이다.
돌로 상징되는 뉴 세라믹은 천연무기물이나 인공합성의 무기화합물을 불에 구워(소)만든 하나의 도자기 (세라믹) 와 같은 소재. 이것은 금속이나 플래스틱을 대신할 수있는 제3의 산업소재로 평가되고 있다.
자동차의 엔진도 멀지않아 이 세라믹으로 만들어진다. 열의 충격에 강하고, 녹이 슬지않으며, 그 원료가 지구상에 무진장으로 쌍여 있다. 소재혁명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미 선진국에선 철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는 말도 한다. 한때 미국의 제철능력을 앞섰다고 호언하던 일본조차도 지금 눈을 세라믹으로 돌리고 있다. 바로 신일본제철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미생물의 시대는 바이오 테크놀러지(생명공학)의 산물이다. 비료없는 농사. 인공혈액, 인터페론의 실용화등은 벌써부터 예고된 바 있었다.
우주과학은 스페이스 셔틀을 통해 우리가 눈으로 보았다.
지금 세계는 소리없는 전쟁속에 있다. 기술혁신을 위한 경쟁이 그것이다. 열전을 벌이고 있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
한때 관전자들은 일본쪽의 승세를 보는 듯 했지만, 전세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전자문명의 꽃을 피운 반도체분야에선 일목이 앞서고 있는 것 같다. 우선 세계시장 점유율서 일본은 70%의 몫을 차지하고있다.
일본은 지난해에 1억달러, 85년에 20억달러의 매상을 바라본다.
그러나 정작 과학자들의 평가는 다르다. 일본의 기술수준은 미국에 비하면 아직「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선」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얘기다.
반도체를 심장으로 하고있는 산업로보트의 경우만 보아도 미국은 다기능·지능면에서 일본을 훨씬 앞서려 하고 있다.
바로 이것은 기술후발국의 한계를 보여주는 생생한 예이기도 하다. 가령 일본의 기술은 기계의 부품이 5천 내지 5만개일 경우에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 부품이 20만개나 되는 제트기 또는 1백만점이 넘는 인공위성등에선 아직 미국을 따를 나라가 없다.
이런 경우를 뒤집어 생각하면 이른바 중진국이 세계의 기술전쟁에서 견디어 낼 수있는 여지는 한정되어있다. 3천점이하의 제품이다. 단순기계와 가전제품들이 이 범주에 속할 것이다.
기술혁신을 위한 투자에서도 그런 한계를 볼 수 있다. 1억의 인구를 가진 일본의 연간 기술투자는 약3조원, 인구 2억수천인 미국은 6조3천억원. 물론 미국은 그 투자의 절반을 군사기술개발에 쓰고 있지만, 벌써 수년에 걸친 투자축적이 있어 기술개발의 저력에선 오히려 일본을 앞서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는 개발보다는 도입이 더 유리하다는 결론도 얻을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