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사라진 사람 사는 땅"|작가 김홍신씨, 통금 풀린 밤거리를 취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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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왜 이렇게 조용할까. 잃어버렸던 4시간을 되돌려 받은 날인데, 그냥 가기에는 어쩐지 발길이 더디어지는 밤인데‥』
나는 조용한 통금해제 첫날의 심야거리를 달리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꼭 시끌 벅쩍 해야 할 이유도 없다. 아니 그렇지 않아야 한다.
신문사 차를 타고 밤거리에 나섰다. 11시 정각.
서울시경찰국 제1기동대특별순찰대(대장 박광치 경감)에 들어섰다. 막 예방순찰의 임무를 띤 순찰차가 출동한 뒤였다. 통금해제 때문에 비상근무에 들어간 특별순찰대는 5개 지구대가 총출동하여 24시간 교대의 당·비번 체제가 48시간 연속근무로 바뀌었다.
나 같은 경찰 알레르기체질도 그들의 분주함과 연속되는 격무의 시련을 지켜보니까 한 가닥 고마움이 솟아나고 있었다.
11시20분. 제2지구대장 피성원 경위(46)가 탑승한 서울3다6158 특별순찰차에 동승, 광화문을 한바퀴 돌아 광화문파출소 앞에 내렸다. 좌석버스와 택시들이 줄지어 섰지만 승객은 없었다.
파출소장 얘기는 마음이 느긋해져서 그런지 사람의 숫자가 훨씬 줄었다고 했다. 택시의 속력은 현저하게 느려졌고 클랙슨 소리는 전혀 나지 않았다. 평소라면 땅벌 집 쑤셔 놓은 것처럼 시끄럽던 지역이었다.
경찰의 숫자가 많은 것이 오히려 이상스러워 보였다.
11시36분을 가리키는 시계를 내보이며 방배동 가는 41번 좌석버스 기사는 시니컬하게 웃었다.
『보쇼. 손님이 세명 밖에 없쟎소. 그 전 같으면 미어 터졌는데.』
11시 45분. 무교동 술집과 이른바 낙지골목. 교통 정리하는 경찰은 차라리 한가로 왔다. 낙지 집들은 거의 문을 닫고 바닥청소를 하고 있었고 몇몇 집은 다정하게 기대앉은 젊은 연인들이 옆집 악기 사에서 크게 틀어 놓은 템포 빠른 음악에 맞춰 발장단을 치고 있었다. 술 취한 젊은이들의 비틀거리는 걸음도 자유스러움을 만끽하려는 아름다운 춤사위 같았다.
밤11시57분. 남대문 옆 도오뀨 호텔 불빛도 깜빡거리며 졸고 있었다. 한산한 거리에서 나는 아늑함을 느꼈다.
『망했소. 들어 갈라요. 통금 없애서 우리만 녹았소.』
택시기사가 투덜거렸다. 밤12시 정각. 명동입구에서 내렸다. 심야택시의 할증료 조견 표를 뒤늦게 돌리는 사람들 입김이 허옇게 뿜어져 나왔다. 팔짱 낀 연인들의 웃음소리가 경쾌했다. 언젠가 통금의 명동거리를 취재하며 느꼈던 그 삭막함은 사라져 버리고 사람 사는 땅처럼 느껴졌다.
중부서장 권한수 총경이 너털웃음을 웃으며 술 취한 젊은이들과 얼크러져 씨름하는 경찰관들의 등을 두드려 주고 있었다.
『다른 때는 취객이 없었지요. 숨어서 마셨지만 이제 내놓고 마시니까 경찰관들 고생은 뻔한 겁니다』
삼일빌딩 근처는 관수동 파출소 불빛만 유난히 밝았다. 사람들이 도대체 이 역사적인 밤에 어디로 갔단 말인가.
관수동 지역에 종로경찰서 이동경찰서 차가 한가롭게 서 있었다. 흥청거리는 국일관골목길의 불빛 속으로 술 취한 여자가 남자에게 매달려 걸었고, 그 맞은 편에서는 술 취한 여자가 경찰관을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0시24분. 종로5가엔 의정부가는 빈 택시만 늘어서 있었다. 동대문을 향해 달리는 특별순찰차 안에서 한 경찰관은 이렇게 말했다.
『뛰는 사람, 달리는 차, 신호를 무시하는 사람이 없는 게 오늘밤 특징입니다. 택시 숫자가 늘었다는 것 말곤 오히려 좋아졌어요』
상오 1시 10분. 다시 명동거리. 아까보다 더 조용해서 명동냄새가 나지 않았다.
시청앞 지하도는 철문으로 굳게 잠기어 있었다. 나는 그 넓은 시청 앞을 무단횡단 했다. 기분이 얼큰했다.
상오2시 서소문. 2시 반 신촌, 3시 서울대교, 3시20분 한남동과 남산, 4시5분 다시 명동 모두가 조용했다.
통금이 풀린 날 밤의 은근한 소란을 기대한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기만 했다. 그걸 걱정한 사람들의 그 허망한 기우와 그 좁은 소갈머리가 밉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쓸데없이 밤을 새운 셈이었다. 통행금지가 존재했던 그 시절이 영원한 추억으로만 남아야 한다는 내 작은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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