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비행(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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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통금이 해제됐던 지난해연말인 12월31일밤11시, 서울수유3동174의7 디스코 클럽 솔로몬.
어지러운 조명과, 고막이 터질듯한 음악속에서 1백여명의 10대 청소년들이 광란에 가까운 몸짓으로 춤을 추고 있다.
탁자위에는 맥주병, 국산양주병들이 즐비하고 번뜩이는 불빛사이로 담배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서울북공고 안춘길교사와 서울시교위 이진재장학사등 학생교외생활지도합동단속반이 경찰과 함께 현장을 덮친 것은 바로 이 때. 그러나 출입구를 막아선 건장한 기도들과 실항이를 벌이는 사이 무대위에 가득했던 손님들은 어느 틈엔가 연기처럼 사라지고 김모군(17·K고교2년)등 미성년자8명만이 운 나쁘게(?)적발됐다. 교외지도경력 10년의 안교사는 고객을 가장한 정보원을 미리 투입, 파악한 결과 적어도 50명쯤은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의외로 적은데 실망한 모습이었다. 그나마 이들 가운데 5명은 순순히 이름과 학교명을 댔으나 나머지 3명은 학생이 아니라고 딱 잡아뗐다.
베테랑교사들의 눈에는 분명 학생으로 보였으나 방학동안 기른듯한 덥수룩한 머리에 청바지· T셔츠등의 사복차림을 한 이들은 오히려『선생이면 학생이나 지도할 일이지 왜 멀쩡한 사람까지 건드려 연말기분을 잡치게 하느냐』고 을러댔다.
업주들도 단속반 일행에게 『당신들이 학생출입하는 것을 봤느냐』 『왜 남의 대목장사를 방해하느냐』는 등 폭언을 퍼부었다.
통금해제 첫날을 앞둔 5일밤 중고등교사7명, 장학사2명, 경찰2명등 11명이 2개조로 나뉘어 지도에 나섰던 마포·신촌지역 담당 교외생활지도반 (반장박종명서울시교위장학사) 은 하오7시부터 자정까지 신촌로터리·이대·홍대주변·공덕동로터리·극장가등을 순찰했으나 평일에는 평균5∼7명씩 적발됐던 지도대상 학생이 이날따라 단1명도 없었다.
이는 학부모들의 보살핌이 주효한 덕분이기도하나 단속이 어렵기 때문. 청량리·태능·북부경찰서지역선도활동에 나섰던 박성건장학관은 『학생들이 당국의 자유화조치를 다 알고있어 교사들의 선도를 거부하는 현상도 있는 것 같다면서 역주변에서 배회하다 적발된 학생차림의 청소년들은 『휴가나온 장병』이라는 식으로 합동지도반을 외면해 지도단속의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휘경중 민춘득교사는『학생선도 활동은 이처럼 교과나 진학지도 못지 않게 중요하고 또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실제로 교사들에게는 학생신분을 강제로 확인하거나 연행 또는 조사할 수 있는 권한조차 법적으로 보장되어있지 않은데다 학생들의 외모마저 앞으로 성인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된다면 지도단속이 더욱 어려워지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서울 영등포고 황복성교사는 또『지금까지는 학생들이 사복을 입었어도 머리모양에서 학생티가 나기 때문에 선도하기가 비교적 손쉬웠으나 앞으로는 학생비행가운데서도 가장 비중이 큰 유흥업소출입문제는 업주들의 협조없이는 손조차 댈수 없다』고 말했다.
79년 5만9천9백75명, 80년 6만5천4백69명(치안본부집계)등 해마다 늘고있는 학생·청소년범죄가 통금해제와 교복·머리형 자유화조치로 더욱 급격히 증가하리라는 것은 당연히 예상되는 일.
서울시 교육위원회 이준해학무국장은『이번 조치로 학교나 교육위원회등이 주도하던 학생교외지도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면서 앞으로는 전국민이 교사의 입장에서 청소년들을 선도하는 「사회의 학교화」풍토가 하루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홍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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