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현충일 … 10시에 묵념합시다] "나라로부터 받은 도움 이젠 이웃에 나눠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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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속 국립현충원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은 유가족들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텐트를 쳐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승식 기자

"그동안 도움만 받아왔는데 이제는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베풀어야죠."

지난 4일 오후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 정순례(96) 할머니 집에는 노란색 조끼를 입은 50대 자원봉사자 다섯 명이 찾아왔다. 이들은 치매 증세를 보이면서 "싫다"고 투정부리는 정 할머니를 달래며 목욕을 시켰다. 이어 손.발톱을 깎고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자 정 할머니는 "시원해 좋다, 더 해 달라"며 봉사자들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날 정 할머니의 집을 찾은 사람들은 전주시에 거주하는 전몰 군경 유가족 회원들이다. 모두 한국전쟁 때 아버지를 국가에 바친 사람이다.

현재 활동 중인 회원은 20여 명으로 대부분 1950~53년생이다. 이들은 홀어머니 밑에서, 혹은 부모를 모두 잃고 고아로 자란 탓에 대부분 고통스럽고 험난한 세월을 보냈다.

이들이 자원봉사자로 변신한 것은 지난해 10월부터다. 김영도(55)씨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그동안 많은 지원을 받았으니 이제는 우리가 주변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자. 특히 어려움을 겪는 유족들을 우리가 보살피자"고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들은 이때부터 몸이 불편하면서도 가족이 없어 소외된 군경 유족을 매주 한 번씩 방문해 집안 청소와 빨래 등을 해 주고 있다. 또 혼자 사는 미망인들을 정기적으로 방문, 아들.딸이 돼 말동무를 해 준다. 거동을 못하는 장애인들에게는 반찬을 만들어 주고 외출 도우미 역할도 한다. 활동은 5명씩 4개 조를 만들어 조별로 1주일씩 돌아가면서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회원 전체가 모여 전주 시내 문화 유적지를 돌면서 주변 청소도 하고, 전주천에 나가 쓰레기.빈병을 줍기도 한다. 최근에는 현충일을 앞두고 전주 시내 군경묘지를 찾아 500여 기의 묘비를 일일이 닦아 내고 주변 청소를 했다.

장숙자(56)씨는 "주변 어르신들의 집으로 봉사활동을 나갈 때면 한국전쟁 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더욱 정성을 기울이게 된다"며 "힘이 닿는 한 이웃을 위해 더 열심히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주=장대석 기자 <dsjang@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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