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피난처 거쳐 온 외국 자본 국내 투자수익에 과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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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투자자가 말레이시아 라부안과 같은 조세피난처에 세운 페이퍼컴퍼니(명목회사)를 통해 국내에 투자한 뒤 올린 투자이익에 대해서도 세금을 물리는 방안이 추진된다.

지금은 조세피난처를 거쳐 국내에 투자한 외국인이 국내에서 자본이득을 보더라도 그 나라와 조세조약이 체결돼 있으면 국내에서는 세금을 내지 않는다. 이와 함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외국계 펀드가 우리나라 회사의 지분 중 25% 이상을 투자했거나, 자산 중 50% 이상이 부동산으로 이뤄진 회사에 투자한 뒤 되팔아 양도차익이 나면 그 차익에 대해 우리 정부가 세금을 물리는 것도 추진된다.

이들 나라와 이중과세방지협정을 맺었기 때문에 지금은 투자자가 살고 있는 거주국에서만 세금을 물린다.

재정경제부는 국내 세법과 국제 조세조약을 하반기에 이같이 개정할 계획이라고 6일 밝혔다. 재경부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사모펀드 같은 외국 투자자가 국내에 투자해 많은 이익을 올렸지만 현행 세법과 조세조약에 따르면 국내에는 세금을 내지 않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 조세피난처(Tax Haven)=기업소득에 대한 세금이 아예 없거나 아주 적기 때문에 제3국의 기업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본사를 두는 지역을 말한다. 이때 본사는 서류상의 회사가 대부분이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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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국가와 조약 개정 쉽지 않을 듯

외환위기 이후 제일은행을 인수했던 외국계 펀드인 뉴브리지캐피털은 지난해 제일은행을 되팔아 1조1500억원의 양도차익을 올렸지만 국내에서 세금을 한 푼도 안 냈다. 한국은 말레이시아와 이중과세방지협약을 맺었기 때문에 외국계 편드는 본사가 등록된 나라에만 세금을 낸다. 더욱이 라부안은 조세피난처여서 뉴브리지는 말레이시아에서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정부가 조세조약을 개정하려는 것은 페이퍼컴퍼니(명목회사)를 조세피난처에 세운 뒤 국내에 들어와 투자이익을 올리는 외국계 펀드에 적정한 세금을 물리기 위해서다.

미국.영국 등 OECD 국가들은 외국계 펀드의 조세 회피를 방지하기 위해 조세피난처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전 세계 62개국과 맺은 조세조약은 대부분 1970~80년대에 체결돼 조세피난처에 대한 규제가 약했다. 이 때문에 국내에 투자한 여러 외국계 펀드는 이 조세조약을 활용해 조세 회피지역에 본사를 두고 국내에 투자한 뒤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

OECD 국가에 속한 외국법인이 국내에 투자한 뒤 주식양도차익을 올려도 국내에서는 과세하지 못했다. 그래서 시민단체 등에서 계속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조세조약의 개정은 상대방 국가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는 7일부터 말레이시아와 조세조약 개정을 위한 2차 협상을 할 예정이다. 하지만 말레이시아는 국제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라부안을 조세피난처로 지정했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없으면 개정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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