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줄 영장기각률 … 판사 따라 2배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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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7년간 선박수리업에 종사해 도주의 우려가 없다. 범죄의 처벌은 확정판결에 의한 형 집행으로 이뤄져야 한다’.

 무면허 음주운전으로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은 뒤 또다시 혈중 알코올 농도 0.182%의 만취 상태에서 운전한 피의자 A씨. 전주지법 군산지원의 영장전담판사가 A씨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기각 사유를 이렇게 밝혔다. 그러나 같은 법원의 다른 판사는 동종 범죄를 저질러 집행유예 기간에 있는 피의자 B씨가 혈중 알코올 농도 0.194% 상태에서 운전한 사건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현직 부장검사가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하는 판사에 따라 정반대의 결론이 내려지고 있다”며 법원의 모호한 영장 발부 기준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전주지검 군산지청 안승진 형사1부장검사는 대검찰청이 발행하는 논문집 ‘형사법의 신동향’ 44호에 ‘현행 구속영장 기각기준에 관한 실무 연구’ 논문을 게재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전주지검 군산지청은 올 들어 지난 5월까지 139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법원이 이 중 37명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려 기각률이 26.6%에 달했다. 전국 평균(19.4%)을 크게 웃도는 수치로 지난해 기각률은 전국 평균(18.2%)과 비슷한 18.8%였다. 특히 지난 2월 말 법원 인사로 새로 바뀐 영장전담판사가 처리한 구속영장의 기각률이 5월 말까지 3개월간 35.7%로 크게 높아졌다. 같은 기간 당직 판사가 담당한 사건은 기각률이 17.1%로 전국 평균을 밑돌았다. 안 부장검사는 “영장전담판사가 누구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져 일반 국민으로서는 예측가능성이 떨어진다”며 “일각에서는 구속영장 발부를 두고 ‘로또복권’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고 지적했다.

 해당 논문에 언급된 영장전담판사는 이형주 부장판사다. 그는 지난 6월 여객선 안전점검 서류를 허위로 작성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한국해운조합 운항관리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해양 안전은 국가의 격이 올라가야 해결된다”는 사유를 들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근무하던 지난해 2월에는 불법 도박장을 개장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국가가 거악을 범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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