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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호국의 달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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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가장 미국적인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학의 권위자 찰스 파버는 시어도어 루스벨트(1858~1919)를 꼽는다. 26대 대통령인 그의 얼굴은 미국 중서부 러슈모어 산의 암벽에 새겨져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워싱턴, 미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제퍼슨, 노예 해방의 링컨 등과 함께다. 무엇이 그를 '대통령 얼굴 바위'의 주인공 반열에 올렸을까.

1898년 미국과 스페인 간에 전쟁이 나자 그는 해군 차관보 자리를 내쳤다. 전투에 직접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눈이 나쁜 그는 안경을 10개나 갖고 전장에 나갔다. 비정규군 중령으로 자원병을 이끌고 싸웠다. 당시 40세였다. 전장에서 그의 구호는 뒤에서 소리지르는 "돌격(charge)"이 아니었다. "나를 따르라(follow me)"고 외쳤다. 미국은 열광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진수를 맛봤던 것이다(박보균, '살아 숨쉬는 미국역사').

"가장 존경받는 한국인은?"

두 번이나 백의종군 한 이순신(李舜臣)이 아닐까. "면(勉)은 어깨로 적의 칼을 받았다. 적의 칼이 면의 몸을 세로로 갈랐다. 죽을 때, 면은 스물한 살이었다. 혼인하지 않았다." 김훈은 '칼의 노래'에서 순신의 셋째아들 면의 죽음을 이렇게 그렸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는데 순신은 면을 가슴에 묻고 싸웠다. 그리고 전사했다.

병역을 마쳐야 한국 국적 이탈이 가능하도록 한 국적법 개정안이 5월 4일 국회에서 통과됐고 5월 24일 발효됐다. 보통 하루 2명이던 국적 이탈자가 그 20일 동안 1820명이나 됐다. 개중엔 강보(襁褓)에 싸인 아기도 있었다. 대부분 병역 기피가 이유였다. 정부는 재고의 기회를 주고자 했다. 지난달 말까지 국적 이탈 취하 접수를 받았다. 1일 법무부 발표에 따르면 225명이 다시 한국 사람으로 남았다.

자, 이제 조국을 잊고 떠나는 이들에게 이런 말을 건네면 어떨까. "그대, 이역의 삶이 고단하거든 언제든 돌아오라. 그대 조국을 버려도 조국은 그대를 버린 적이 없느니." 미소 가득, 손도 꽉 잡아 주자. 통 크게 말이다. 그러면 이 땅에 남아 이 강산을 지키는 우리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지 않을까. 호국보훈의 달이라는 6월,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을 곰곰 생각해 본다.

유상철 국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