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경제의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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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를 야단치지 마시오. 우리들은 책임을 다하고 있읍니다.』
최근 폴란드의 바르샤바시내 상점들앞에 나붙은 호소문이다.
긴줄을 짓고 지루하게 기다려도 일용품을 사지못한 시민들이 분을 삭이지 못해 상점을 때려부수자 가게주인들은 그렇게라도 하지않을수 없었다.
지난 14일 비상계엄을 편 폴란드사태의 뒤에는 그같은 경제적 난제가 한 원인으로 도사리고 있다.
자유노조가 단시일안에 많은 회원을 끌어들인것도 폴란드정부 내지는 공산계획경제의 실패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것이며 따라서 폴란드사태의 해결도 경제문제의 극복없이는 언제나 불안요인이 남아있다는 것을 말한다.
비록 폴란드정부가 강권으로 사태를 수습한다해도 그것은 한때의 소강상태를 뜻할 뿐이다.
여기에 폴란드정부가 취한 강압정책의 한계가 있고 또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으로의 편향을 불가능하게하는 결정적인 쐐기가 있다.
폴란드정부는 외부의 통신을 두절했음에도 불구하고 16일 유고슬라비아의 탄유그통신을 통해 서방과 동구권에 긴급경제원조를 읍소해왔다.
폴란드의 파산을 막기위해 올해안에 지불해야할 외채이자 3억5천만달러에 대한 긴급차관을 서방측 은행에 요청했는가하면 동구국가들에는 식량·의약품·생활용품의 지원을 호소했다.
폴란드의 대외채무는 지난10월말 현재 2백57억달러로 매우 무거운 부담을 안고있어 만약 서방은행이 차관공여를 거부하면 채무불이행국으로 낙인찍힐 위험이 있다.
또 소련은 이미 쌀 5만t의 수송을 개시했고 유고슬라비아와 헝가리도 긴급물자를 보낼 예정이라고하나 그들의 능력에 비추어 얼마나 해줄수 있을지 의문이다.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으로선 경제적 파탄으로부터 불붙은 폴란드의 불똥이 번져오지 않도록 가능한 지원을 하겠지만 그들 자신의 경제사정도 긴박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국민이 식량을 구하려고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동구국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동구권의 곡창지대인 루마니아의 금년 곡물생산은 2천3백70만t 목표에 2천만t 실적에 그쳤으며 체코슬로바키아는 1천1백만t 목표에 15%가 감수된 9백35만t, 동독도 목표를 하회한 것을 추산되고 있다.
경제위기에 곡물생산저조가 가세하고있는 것을 알수 있다.
거기에 무엇보다도 코메콘(공산권경제상호원조회의)의 맹주인 소련의 경제부진이 겹치고있는 사실을 보아 넘길수 없다.
소련은 지금까지 국제시세보다 값이 싼 에너지를 동구권에 공급하고 서방시장에서는 팔리지 않는 저질공업제품을 사주어왔으나 그 힘이 부치고있는 실정이다.
곡물생산은 3년간 흉작을 맞고있고 과도한 군사비지출로 동구권에의 「원조피로증」에 걸려있다.
그래서 동구국가들과 약속한 81~85년간의 에너지수출량을 10% 줄이겠다고 하고 있는가하면 대폴란드 지원자금을 마련키위해 보유금을 서방에 내다팔고 서방은행에 넣어둔 예금을 끌어내 쓰고 있다.
동구국가가 모두 어깨가 무거운데다가 큰 기둥인 소련경제마저 흔들거리고 있으니 폴란드 경제난국을 구할 여유가 충분히 있을리가 없다.
소련으로서는 폴란드가 일단 강압정책을 써서 공산당정권을 유지하면 더할수없이 좋은 결과로 만족할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폴란드는 소요를 가라앉힌다고해도 경제를 되살릴만한 능력이 없고보면 결국 서방국가의 경제협력을 원하지 않을수가 없을것이며 점진적으로나마 기왕에 추구하던 시장경제기능의 도입을 실현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러한 폴란드의 경제개혁에는 어쩔수 없는 제약이 있다.
에너지는 소련에 의지하고 있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서방국가의 돈을 써야하는 어려운 줄타기를 해야한다.
비단 폴란드뿐아니라 동구국가들에는 폴란드사태 진압이후에 더욱 뛰어넘기 어려운 경제적수렁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폴란드문제의 본질에는 노동자의 천국이라는 공산주의가 갖는 모순이 그대로 노출되고있다는 측면이 중요하다.
전체공산계획경제의 비효율성은 오래전부터 입증된 것이고 폴란드사태는 공산주의의 위기를 드러내놓은 하나의 산 증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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