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이어 말랄라도 … "노벨 평화상, 가장 논쟁적인 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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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연소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지목된 파키스탄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17)는 자서전 『나는 말랄라』에 이렇게 적었다. “남동생 쿠샬은 누나가 뭘 했다고 세계적 주목을 받는 건지 궁금해한다.” 9일(현지시간) 노벨 평화상 발표를 보며 이런 의문을 품은 건 쿠샬만은 아닐 듯하다. 말랄라가 훌륭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노벨 평화상의 선정 기준과 과정의 모호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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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의 아이콘 격인 마하트마 간디(1869~1948)도 받지 못한 노벨 평화상을 두고 미 언론인 제이 노르딜링거는 『평화라고 그들은 말한다』에서 “노벨 평화상은 가장 유명하고도 가장 논쟁적인 상”이라 말했다. 간디는 다섯 번이나 후보로 지명됐으나 정작 수상자로 발표되기 며칠 전 암살됐다.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은 노벨 평화상이 “국가 간 우애를 위해, 군 병력 폐지·축소를 위해, 평화 증진을 위해 최대 또는 최고의 노력을 한 사람이나 기관”에 주어지도록 했다. 물리학상처럼 객관적 평가가 불가능한 ‘평화’라는 추상성 속에서 1901년부터 수여된 노벨 평화상은 평화보다 논란을 더 많이 불러왔다. 타임지가 2011년 선정한 역대 노벨상 논란 10가지 중 7건이 노벨 평화상이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 일부가 전쟁을 조장했다는 등의 이유로 “노벨 평화상이 아니라 ‘노벨 전쟁상’이라고 불러야 한다”(허핑턴포스트)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중동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1994년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외무장관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에 대해서는 “테러리스트에게 평화상을 줄 수 없다”고 항의하며 선정위원이 탈퇴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선정 과정도 논란을 부른다. 노벨 평화상 심사·선정은 노르웨이 국회가 임명하는 5명의 위원들이 한다. 임기는 6년이고 재선이 가능하다. 각국 전문가 1000여 명의 추천을 받아 선정 범위를 좁혀나가는 방식이다. 현 위원장인 토르비에른 야글란은 노르웨이 노동당 총리 출신 정치인이다. 선정위원회가 정치적 결정을 해왔다는 비판이 이는 이유다. 2009년 집권 1년차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수상자로 선정했을 땐 람 이매뉴얼 비서실장이 “노르웨이가 미국에 아첨하는 거냐”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마저 “과분하다”며 “내 업적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앞으로 실천에 나서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듬해인 2010년 노벨위원회는 중국 반체제 인사인 류샤오보(劉曉波)를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그러나 이에 반발해 중국이 노르웨이와 교역 협상을 중단하고 양국 관계를 급랭시키는 역풍을 맞았다. 이후 노벨 평화상 선정위원회가 안전하면서도 안일한 선택을 해왔다는 비판이 나온다. 2012년 유럽연합(EU)이 “지역 평화에 기여했다”며 선정된 것을 두고는 “최악의 노벨 평화상”이라는 비판과 함께 오슬로에서 대대적인 반대 시위까지 열렸다. 유럽 경제 위기에서 EU의 역할 회의론이 한창이던 때 EU에 평화상을 수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이었다.

 내년 1월 노르웨이 의회는 5인 위원 중 3명을 교체하는 투표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선정위의 개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크리스천 사이언스모니터는 11일 “선정위원회 구성은 노르웨이 의회 여야 구도를 그대로 반영해왔다”고 지적했다. 야글란 위원장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는 “노벨 평화상 선정 과정은 언제나 그래왔듯 독립적으로 이뤄졌다”고 11일 항변했다. 그러나 말랄라 선정을 두고 파키스탄 내에서조차 “말랄라가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으나 파키스탄에 대한 서방의 영향력을 강화하려고 준 것”(파키스탄 옵서버)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등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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