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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복지 부담에 … 영천시, 물 새는 둑도 못 고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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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짓다 만 수해방지 둑·자전거길 상습 침수지역인 대전천 상류에 둑을 쌓고 자전거길을 만드는 공사가 예산 부족으로 멈췄다. 관할 대전시 동구청은 총예산 중 복지비 비중이 65%에 이른다. [프리랜서 김성태]
저수지 누수 … 실개천 된 도로 경북 영천시 청통면의 저수지인 봉산지 둑에서 물이 새어 나와 앞길이 실개천으로 변했다. 제방이 무너질 위험이 있는데도 예산이 없어 보수하지 못했다. [프리랜서 공정식]

지난 8월 21일 경북 영천시 괴연저수지 둑 일부가 무너져 마을 앞 하천이 범람했다. 미리 사이렌이 울려 주민 500여 명은 대피했지만 주택 20여 채가 물에 잠겼다. 1945년 만든 괴연저수지는 전부터 물이 새는 등 붕괴 조짐이 있었다.

이뿐 아니다. 저수지 안전 진단 결과 경북 지역에는 당장 보수를 해야 하는 붕괴우려 위험 D등급 저수지가 229곳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강하는 데 모두 730억원이 필요하지만 내년까지 확보된 예산은 210억원뿐이다. 위험한 저수지를 그대로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북도 한윤준 농촌개발과장은 “저수지 제방 보수가 시급하지만 복지비용 등의 증가로 예산 확보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무상복지가 지방자치단체들에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무상복지에 돈을 쏟느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저수지 보강공사조차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다. 무상급식과 기초연금 등이 실시되면서 2010년 21조3084억원이던 광역시·도의 총 복지예산은 올해 33조3275억원으로 4년 새 56.4% 증가했다. 광역시·도의 연간예산에서 복지예산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같은 기간 22.7%에서 31%로 늘었다.

 시·군·구 같은 기초자치단체는 더 심각하다. 복지예산 비중이 50~65%다. 무상급식 부담을 광역자치단체보다 많이 하기 때문이다. 노인과 저소득층이 많을수록 복지예산으로 인한 재정 압박이 심하다.

 기초지자체 중에는 쓰레기 처리비조차 주지 못하는 곳도 있다. 대전시 동구는 지난해와 올해 2년간 쓰레기수거 대행 사업비 154억원을 마련하지 못했다. 민간업체에 돈을 못 줬다면 수거를 않는 ‘쓰레기 대란’이 일어날 수도 있었겠지만 그나마 처리를 공기업인 대전도시개발공사가 맡아 체납인 상태로 쓰레기를 계속 치우고 있다.

 대전시 동구는 또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직원 800여 명의 12월분 급여 23억원을 줄 길이 막막한 상태다. 부산시 북구 역시 올해 줄 인건비 446억원 중 10억원이 부족하다. 대전시 동구는 전체 예산 대비 복지 비중이 64.8%, 부산시 북구는 60.7%에 이른다. 이들 지자체는 각종 업무추진비 등을 삭감해 부족한 급여를 마련키로 했다.

 울산시 중구는 소방차가 들어가기 힘든 좁은 도로를 넓히지 못하고 있다. 학성동·반구동 주택가가 대표적이다. 상당수 도로 폭이 4m 정도다. 차량이 교행할 수 없는 폭에 곳곳에 주차까지 돼 있다. 도저히 소방차가 들어갈 수 없다. 울산시 중구에는 이렇게 소방차 출동을 위해 넓혀야 할 좁은 도로가 100곳이 넘는다. 하지만 복지 부담 때문에 올해 18억3000만원을 배정해 5곳만 손보고 있다.

 안전이라든가 공무원 월급, 쓰레기 처리 같은 생활예산조차 충족시키지 못하는 실정이어서 도로 확충이나 하천 정비 등은 아예 뒤로 물러앉았다.

300억원을 들여 2011년까지 2차로를 4차로로 늘리겠다던 청주시 흥덕구의 강서택지개발지구~석곡교차로 구간(2㎞) 확장공사는 여태껏 착공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수년 전부터 출퇴근 시간이면 차량이 기어가다시피 하는데도 돈이 없어 이제 겨우 토지보상을 마쳤다. 흥덕구 강서1동 민인기(69) 주민자치위원장은 “6, 7년 전 도로를 넓힌다는 소리에 모두 기뻐했지만 지금껏 저러고 있어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기도는 설계를 마친 지 10년이 지난 24개 지방도를 아직 착공하지 못하고 있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염태영(경기도 수원시장) 사무총장은 “일부 지자체가 전시성·선심성 사업을 벌이기도 했지만 지자체 재정 압박은 정부가 무상복지 시책을 벌여놓고 부담을 지자체에 떠넘긴 탓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중앙정부는 국가의 복지 시책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지자체에 배달비용뿐 아니라 상품비(복지 예산)까지 분담하라고 하고 있다”며 “복지에 대해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에 깨끗하게 선을 긋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홍권삼·김방현·임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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