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장암 고위험군?'… 발병 예측해 '싹' 부터 자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진행성 대장 종양을 예측하는 한국형 모델’을 최초로 개발한 차재명 교수. 대장내시경을 통해 암의 씨앗인 용종을 찾아내 말끔히 제거하고 대장암을 예방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김수정 기자

한때 ‘선진국병’으로 불리며 우리에게 낯설었던 대장암. 하지만 현재 갑상선암·위암에 이어 국내 암 발병률 3위다. 문제는 초기 증상이 없어 조기 발견이 어렵다는 점이다. 혈변·복통 등의 증상이 나타날 땐 이미 대장암 2기를 넘어선 상태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암 중에서 유일하게 대장암만큼은 예방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 이가 있다. 강동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차재명 교수다.

대장내시경을 통해 암의 전 단계인 용종(폴립)을 찾아내고 제거해 암으로의 진행을 애초에 차단한다. 암의 ‘씨앗’을 제거함으로써 대장암 발병률 제로’에 도전하는 일명 ‘대장암 저격수’다. 용종의 위험도를 예측하는 정확한 진단과 대장내시경 사각지대의 용종도 샅샅이 찾아내는 날카로운 눈, 작은 용종도 깔끔하게 제거하는 섬세한 기술 등 삼박자가 고루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다.

오경아 기자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은 김세환(54·가명)씨. 하지만 대장내시경 검사 계획은 없었다. 50세 이상은 검사받아야 한다는 권고사항이 있었지만 별다른 증상이 없는 데다 관장약 복용 등 번거로움 때문에 피하고 싶었던 것. 그러던 차에 그는 차재명 교수를 만났다. 차 교수는 검사를 망설이는 김씨에게 ‘진행성 대장 종양을 예측하는 한국형 모델’을 적용해 보자고 권유했다. 간단한 설문 형식이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김씨는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하는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것이다. 차 교수의 강한 권유에 김씨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다음 날 추가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대장에서 커다란 용종이 발견됐고, 조직검사 결과 암세포로 판명됐다. 평소 육식을 즐기지 않고 꾸준히 운동해 온 김씨는 뜻밖의 진단 결과에 아연실색했다. 차 교수는 “그대로 방치했다면 1~2년 사이에 크게 악화했을 것”이라며 “다행히 조기 발견돼 내시경시술만으로 치료가 종결됐다”고 말했다.

 서구화된 식습관 탓에 대장암은 이제 흔한 암이 됐다. 우리나라 남성의 대장암 발병률은 세계 4위, 아시아 1위다. 하지만 대장암은 자가진단으로 조기 발견이 어렵다. 차 교수는 “대장은 공간이 넓고 쉽게 늘어나므로 큰 종양이 막을 때까지 증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며 “특히 오른쪽 대장에 생기는 대장암은 어지럼증·빈혈 같은 가벼운 증상만 동반한다”고 말했다.

 결국 대장암 조기진단·치료의 관건은 얼마나 빨리 대장암 징후를 포착하느냐에 달렸다. 대장암은 다른 암과 달리 용종 단계를 거친다. 용종의 95%는 암으로 발전한다. 이 중에서도 크기가 1㎝ 이상으로 대장암이 될 가능성이 큰 것을 ‘진행성 대장 종양’이라고 한다. 대장내시경으로 진행성 대장 종양을 찾아 제거하면 대장암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차 교수가 국내 최초로 ‘진행성 대장 종양을 예측하는 한국형 모델’을 개발한 이유다.

예측 모델로 대장내시경 검사 선별

차 교수의 목표는 암의 ‘조기 발견’보다 한발 앞선 ‘예방’이다. 첫째 단계는 대장내시경 검사다. 하지만 무턱대고 검사를 권장할 수는 없다. 차 교수는 “검사 며칠 전부터 특정 음식을 제한하고, 장을 세척해야 하는 불편함은 물론, 대장내시경으로 인한 천공·출혈(1000건당 1명), 심하면 사망(1만2500건당 1명)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환자의 고충을 반영한 것이 차 교수가 개발한 ‘진행성 대장 종양을 예측하는 한국형 모델(팁 참고)’이다. 5개 변수인 나이·성별·가족력·흡연·체질량 지수를 따져 대장 종양의 위험도를 예측한다. 기존에 서양인·아시아인을 기준으로 한 예측 모델은 있었지만 한국인의 식습관·발병·질환 특성 등을 고려한 한국형 모델은 이것이 최초다. 차 교수는 “대장암 위험 요인을 체계화·점수화해 대장내시경 검사를 꼭 받아야 할 환자를 선별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차 교수는 소화기내과 환자 3970명의 자료를 분석했다. 또 다른 환자 1405명에게 적용해 개연성을 검증했다.

용종 분포·모양 따라 다양한 기술 적용

대장암 예방의 둘째 단계는 ‘용종 발견’이다. 이때부터 차 교수의 진가가 발휘된다. 꼼꼼함과 세심함은 필수다. 대장 구석구석에 자리한 용종을 놓치지 말아야 하고, 용종 중에서도 제거해야 할 것과 남겨도 되는 것을 육안으로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장의 점막 주름이나 맹장 안쪽 등 일명 ‘사각지대’에 놓인 용종을 찾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동원한다. 투명 캡을 내시경에 장착해 캡으로 점막 주름을 눌러가면서 검사하거나, 내시경을 반전시켜 뒤에서 앞을 보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다음 단계는 ‘용종 제거’다. 차 교수는 “과거에는 용종이 발견되면 조직검사로 확인한 뒤 절제했지만 장 세척을 두 번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최근에는 발견 즉시 절제한다”고 설명했다.

 대장내시경을 통해 올가미를 넣어 용종을 감싼 뒤 전기를 가해 절제한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용종의 모양·크기에 따라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차 교수는 “용종이 납작해 올가미에 잡히지 않는 경우에는 생리식염수를 주입해 병변을 띄운 채 포획한다”며 “병변이 매우 크면서 납작할 땐 내시경 점막하박리술을 사용해 마치 포를 뜨듯 조심스럽게 표면만 제거한다”고 말했다. 용종 1개 제거에 5~20분 소요된다. 초기 대장암까지도 내시경 절제술로 치료할 수 있다.

 이처럼 대장암 발병률 ‘제로’를 꿈꾸는 차 교수의 원동력은 바로 ‘측은지심(불쌍히 여겨 괴로워하는 마음)’이다. 환자의 아픔·고통에 공감하고, 환자와 소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차 교수는 “인턴·레지던트에게 ‘의사가 갖춰야 할 덕목’을 물으면 대부분 ‘실력’만을 꼽는다”며 “하지만 환자의 아픔을 공유하는 것이 우선이다. 환자보다 성과에만 몰두하는 차가운 의사는 결국 환자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 강동경희대병원 차재명 교수

초기 증상 없는 대장암
조기 검진만이 예방 최선책

국가 암검진을 통해 대장암 진단을 위한 ‘분변잠혈반응 검사(대변에서 혈흔을 찾아내는 검사)’가 시행 중이다. 하지만 이 검사만으로 진행성 대장 종양이나 초기 대장암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대장내시경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에 대해 차 교수에게 물었다.

 -분변잠혈반응 검사의 신뢰도는 어떤가.

 “대장암 예방 효과는 이미 검증됐다. 분변잠혈반응 검사를 매년 받은 사람은 대장암 30년 누적 사망률이 32% 감소했다. 가격이 싸고 안전하며 검사 방법이 간단하다. 하지만 대장내시경 검사에 비하면 진행성 대장 종양, 대장암 발견율이 현저히 낮은 것은 사실이다. 국민의 참여도 역시 33.4%에 불과하다.”

 -대장내시경 검사가 최선인가.

 “초기 대장암은 증상이 없다. 증상이 나타났을 땐 이미 대장암 2기를 넘어서는 경우가 대다수다. 대장내시경은 초기 대장암을 발견하는 것은 물론 암의 싹(용종)을 미리 잘라낼 수 있다.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은 대장내시경 검사를 위해 2시간 동안 부통령에게 대통령 권한을 위임하기도 했다. 검사 받을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다.” 

-대장내시경 검사의 질 관리도 중요하다던데.

 “검사의 질은 ‘샘종(진행성 대장 종양) 발견율’로 나타난다. 실력 있는 의사는 샘종 발견율이 높다. 더 꼼꼼하고 세밀하게 검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의사의 피로도가 샘종 발견에 큰 영향을 미친다. 3개 대학병원 내시경 의사 395명을 비교 분석한 결과, 피로하지 않은 의사 집단의 샘종 발견율은 45%인 반면, 피로한 의사 집단의 샘종 발견율은 25%에 불과했다. 당직, 수면 부족 등으로 인한 의사의 피로도가 검사 결과에 직결되는 만큼 평소 의사의 체력 관리와 충분한 휴식·수면이 필요하다.”

대장내시경 무료검사 이벤트

신청 기간: 10월 13일(월)~23일(목) / 문의: 1577-5800
신청 방법: 강동경희대학교병원 홈페이지(www.khnmc.or.kr)
발표: 10월 31일(금), 강동경희대학교병원 홈페이지

강동경희대학교병원과 중앙일보헬스미디어는 진행성 대장 종양이 의심되는 5명을 선정해 무료로 대장내시경 검사(또는 수면내시경)를 실시합니다. 용종 발견 시 제거 수술까지 제공합니다. 대상은 ‘진행성 대장 종양 한국형 예측 모델’로 자가진단 시 점수가 5점 이상인 경우에 한합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