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의 전시장 네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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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나는 뉴델리에서 약1시간20분 걸린다는 인도의 북쪽 이웃나라인 녜팔수도카트만두로 향했다. 때는 1979년6월. 비행한지 30∼40분도 안되어 구름 위로 눈부시게 전개되는 히말라야산맥의 첩첩산들은 인도쪽에서는 전혀 볼수 없는 풍경들이었다.
히말라야 설봉(설봉)들로 이루어진 자연병풍은 몇번씩이나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네팔은 석가가 탄생한 부다가야를 비롯, 많은 관광지들이 있다. 우선 나는 가까운 시내관광을 하기로 했다.
네팔은 언어가 서로 다른 많은 종족들로 이뤄진 나라다. 사원의 모습도 그 종족만큼이나 스타일이 서로 달랐다.
나는 먼저 쇼앰부사원을 찾기로 했다. 가는길도 별로 좋지않고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별로 밝지 않았다. 쇼앰부사원은 나무가 별로 없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데 벽면은 모두 하얗다.
또 그 흰벽에는 사람의 눈·코를 그려 놓았다. 사원외부나 내부는 수도생활을 하기엔 지나치게 지저분하다는 인상을 준다. 건물도 우중충하고 또한 내부는 촛불에 그을려 있었다. 사원주위에는 정신병자처럼 보이는 사람, 걸인등이 서성거리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눈길을 끄는것은 사원주위를 이리저리 뛰며 노는 원숭이였다.
다시 나는 쇼앰부사원이웃에 있는 티베트사원을 구경하고 갠지스강 상류에 있는 파수파티 사원으로 갔다. 그곳은 힌두교사원으로 세운지 수천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곳도 쇼앰부사원 만큼이나 지저분하고 우중충했다. 강을 중심으로 양안에는 둥근 석탑을 가진사원들과 집들이 놀라운 조각솜씨를 자랑하며 우뚝우뚝 서있었다.
나는 주위사람들에게 커다란 굴뚝이 있는 건물을 가리키며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놀랍게도 화장터라는 대답이다. 이곳에서 태워진 시신의 재를 강으로 홀려 보낸다는 말을 듣고 나는 적이 놀랐다. 내가 그곳을 서성대고 있을 때 한국대사관 직원이 관광을 도와주겠다고 달려왔다.
그는 이상하게 생긴 음침한 사원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곳은「피를 흘리지 않은(멘스가 시작되기전의)처녀를 여신으로 모셔놓은 사원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깜짝놀라 그게 무슨 이야기냐고 물으니 사원안에는 지금도 여신이 살고있으며 그 여신앞에서는 왕도 절을 한다고 덧붙인다.
그여신은 사원안에서 절대로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건물 층마다 만들어놓은 조각품들이었다. 조각 내용이 모두 남녀가 부둥켜 안은 섹스체위였기 때문이다. 너무 노골적인 조각들이라 화가인 내게는 남다른 느낌을 주었다.
다음날 내가 간곳은 박다풀궁전이었다.
그곳은 카트만두시에서 자동차편으로 1시간정도떨어진 곳에 있었다.
가는도중 히말라야산이 유난히 멋지게 보여 사누티미라는 마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스케치를 했다.
박다풀궁전은 어제본 건축물과는 또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지만 주위가 지저분한 것만은 꼭 같았다.
한가지 눈을 끄는 것은 궁전근처에 있는 흙탕물연못에서 사람들은 빨래를 하고 새수 및 목욕도하는 것이었다. 물이 귀하기 때문이란다. 내가 일찍이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관경을 화폭에 담을 때 본 우리나라의 많은 계곡물과는 너무 차이가 있었다.
다시 나는 네팔문화의 발상지이며 불교문화의 중심지라는 바그마데이강건너편으로 갔다.
민가처럼 보이는 낡은 건물들이 옛모습을 간직한채 주위의 석탑과 궁전, 또는 사원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옛문화의 정교함과 화려함을 짐각케 해주는 곳이었다.
인도보다는 스케일에서 뒤지고 장엄한 맛도 없었다. 그러나 한가지 마음구석 깊숙이 남아있는것은 네팔인들의 눈동자였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우수가 깃든것 같기도하지만 퍽 신앙심 깊은 수녀의 눈에서나 볼 수 있는 많은 진실성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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