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현실 안 맞는 자영업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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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산업부 기자

"요즘 대부분의 세탁소는 가정에서 세탁물을 걷어 본사의 공장에서 세탁해 다시 배달만 해 주는데 무슨 자격증이 필요합니까."

서울 반포동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지난달 31일 정부가 발표한 자영업자 대책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 대책의 골자는 현재 과잉상태인 영세 점포 수를 줄이는 것이다. 제과점.세탁소 등을 차리려면 자격증을 따도록 해 창업을 어렵게 한다는 것도 방안으로 나왔다. 자영업자들은 점포 수를 줄이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대책의 실효성에 대해선 고개를 갸웃했다. 김씨는 "지금 세탁소나 제과점은 90% 이상이 프랜차이즈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돈만 대면 본사에서 모두 알아서 해 준다"며 "프랜차이즈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데 자격증으로 제한한다고 점포 수가 줄겠느냐"고 반문했다.

유통 전문가들은 '무작정 창업'을 억제하고 '준비된 창업'을 촉진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에는 공감했다. 그러나 이번 대책은 현실을 모르는 '탁상 행정'으로 보이는 구석이 많다고 지적했다. 한 유통 전문가는 "전체 자영업자의 27%를 차지하면서도 가장 영세한 소매업자에 대한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는 "자영업 컨설팅을 도입하겠다는 방향은 좋지만 이를 감당할 인프라가 없다"고 지적했다. 아파트 상가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소매업자들의 퇴출과 전직을 유도하겠다던데 정부가 재취업을 보장하는 것이냐"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사회적 안전망이 취약한 우리 사회에서 자영업은 거의 유일한 개인 안전망이다. 또 자영업자는 전체 취업자의 37%가량을 차지하며 우리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한 해 55만 명이 창업할 만큼 수요도 많다. 그러나 한 해 44만 명이 폐업할 정도로 자영업자들은 위기에 몰려 있기도 하다. 이런 현실에서 자영업자 대책은 시급하다. 후속대책은 좀 더 현실적인 방안이 나오길 기대한다.

양선희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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