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군』막기위한 『파군』의 강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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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혁명은 흔히 경제위기에서 비롯된다. 그 초기단계에선 혼란은 더욱 심해지고 경제개혁의 시도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결과 혁명대중은 차츰 과격해지며, 지도자중의 일부는 대중의 뜻을 따라 급진적이 되고 다른일부는 뒤로 물러나 혁명세력은 분극화 마무리가 있다. 그하나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악화가 모두를 위협한다는 판단아래 혁명세력과 수구세력의 지도층이 힘을합해 대중의 불만을 뚫어주는 것이며, 또하나는 각기 자기의 입장만을 고집하며 대결로 치닫는 경우다』(폴란드 사회학자「얀·시체판스키」의 혁명론에서).
80년8월 공산세계에서 처음이자 단하나인 자유노조 솔리다르노슈치가 만들어지면서 시작된 폴란드국민의 숨가쁜 민주개혁운동은 열여섯달만에 공산당정부가 비상사태와 군사통치를 선포하고 노조활동을 정지시킴으로써 혁명이 갈수있는 두개의 길중 보다 우울한 쪽으로 들어서 버렸다.

<학생데모가 도화선>
「야루젤스키」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은▲끊임없는 노동자소요와 노조측과의 대화단절 때문에 정상적 수단에 의한 통치가 거의 불가능하며▲이미 닥쳐온 겨울의 경제난을 극복할 경제비상책은 군정아래서 가장효율적으로 펼수 있고▲요즘 다시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는 소련을 무마하고▲무엇보다도 잃어버린 공산당의 국가주도권을 군에 기대 되찾아 보겠다는 계산에서다.
비상사태의 직접적 빌미가 될것은 두달째 계속된 노동자와 학생들의 스트라이크다.
10월중순부터 근한달동안 타노브제그와 젤로나구라성 등지에선 근30만명의 노동자가 식량부족과 지방별 쟁점을 내걸고 파업했으며 이 사태가 가라앉을때쯤엔 10여만의 대학생들이 고등교육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전국 70여대학에서 맹휴 농성에 들어갔다.
올들어 최대의 파업사태였다.
노조의 개혁운동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파업은 퍼지기만한 이유는 한가지, 경제악화 때문이었다. 겨울이 닥쳐오면서 당장 먹을것, 입을것을 구할수 없을 정도로 경제는 썩어드는데 위기의 극복을 위한 정부와 노조의 협조체제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따라서 정부를 위협할 힘은 가졌으면서도 체제바깥에 소외돼 있는 노조는 반대세력으로서 힘을유지하기 위해 줄곧 새로운 쟁점을 찾게된다. 혁명의 기본논리다.
이 혁명의 논리를 두고 노조는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뉘어 운동의 주도권을 놓고 날카롭게 대립했다.
경제의 어려움과 사회혼란이 심해지면서 온건지도층의 자제호소는 차츰 힘을 잃었다. 최근의 파업과 농성사태에서 노조지도부는 어쩔수 없이 끌려다니는 입장이었따.
11월중순 오랜만에 재개된 노조-정부간 협상도 운만 떼어놓고는 답보상태였다. 노조는 정부의 경제정책을 감독할수있는 독립된 사회경제위원회의 구성을 요구한 반면, 정부는 노조를 가톨릭교회와 함께 형식적으로만 정치체제에 참여시키려는 속셈에서 정부가 제안한 국민화합위원회에 참여할것을 종용했다.
협상이 교착되면서 노조는 급진으로 치닫고 정부는 강경책으로 대응했다.
10월중순「카니아」의 뒤를 이어 수상이며 국방상인 「야루젤스키」가 당제1서기까지 맡으면서 세운 대노조전략은 2단계로 돼있었다. 즉, 우선은 대결을 피하고 의회와 교회등을 통해 노조를 설득하며, 이렇게 시간을 벌면서 자신의 지지기반을 넓히고 비상사태와 힘의 행사를 준비한다는 두갈래의 전략이다.

<힘의행사 자신얻어>
그결과 지난 몇달동안 폴란드의 군은 평화시의 공산국가에선 유례를 찾을수 없을만큼 깊숙이 통치체제와 국민생활에 간여하게 됐다. 각료중 4명이 현역장성이며 국영항공사장과 검찰부총장 그리고 당중앙위원 2백명중 10명이 군인이다.
10월하순부터는 처음엔 농촌지역에서, 다음엔 도시지역에서 군특수부대요원들이지방행정을 지휘감독하고있다.
「야루젤스키」는 힘을 구축하면서 노조에 대해 협상참여를 촉구하는 한편, 10월말 의회에 파업규제및 비상조치법안을 제출하고 11월말엔 그통과를 거듭 종용했다.
힘의 행사에 어느정도 자신을 가진 정부가 예행연습삼아 한것이 지난2일의 소방사관농성 강제해산이다. 폴란드사태에서 정부가 본격적으로 보안병력을 동원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결과는정부측에서 볼때 「양호」했다. 현장에서의 부작용은 전혀없었다.
한편 노조는 이사태들에 대해 정부측의 의도에 말려들어가는듯한 반응을 보였다. 간부회는 즉각 확대모임을 갖고 비상조치법안이 의회를 통과하고 선포될 경우 전국총파업을 벌이기로 했다. 노조강경파의 선두인 바르샤바지부는 정부의 무력사용에 맞설 노동자위대의 조직까지 결의하고 오는 17일을 전국적 「항의의날」로 정해 대대적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비상사태의 무대는 이로써 완전히 꾸며진 셈이다. 정부는 7일 노조간부회의에서 나온 과격발언을 녹음한 테이프를 공개하면서 분위기조성을위한 대대적 반노조선전공세를 폈다.
11일부터 그다니스크에서 모인 자유노조전국위 간부회의가 조건부총파업결의를 확인하고 바르샤바지부의 「항의의날」 결정도 총의로 받아들이는 한편, 자유선거요구·임시정부구성등 과격한 주장이 쏟아져나오는것에 때맞춰 「야루젤스키」는 준비했던 올가미를 덮어씌워 버린것이다.
「야루젤스키」가 이제까지는 국가적 비극의 서곡이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애써 피해왔던 비상사태를 결심하게 된데 차츰 노조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여론의 움직임도 한몫을 한것같다. 얼마전 국영TVQKDTHD이 실시한 여론조사결과, 작년8월에나 14개월 뒤인 지난10월28일의 1시간 전국총파업은 46%의 지지밖에 얻지못한것으로 나타났다.
자유노조 기관지가 11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노조원의 34%가 요즘 일어나는 파업의 대부분은 피할수있는 것으로 생각하며 4명중 1명은 공산당의 파업금지요구가 타당하다고 믿고있다. 65%는 파업금지 조치를 반대했지만 실제로 파업이 금지될경우 저항수단으로 총파업을 하자고 주장한 숫자는 5%에 지나지않았다. 이런 통계는 당 전략가들을 크게 고무했음이 틀림없다.

<총파업지지 46%선>
또하나, 좀 역설적이지만 군에 대한 폴란드국민 특유의「믿음」도 군사통치를 결심케한 요소가 될수이TEk.
폴란드공산정권을 받쳐준 기둥은 31만7천병력의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였다.
자유노조가 얼마전 조합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군은 68%의 지지를 얻어 자유노조 자신과 가톨릭교회 다음으로 신뢰받는 사회조직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지난경험에 비추어보건대 군이 탄압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 그들의 인기는 하루아침에 스러질것이며 군자체의 사기도 크게 떨어질 것이다.
정작 질서유지의 주역은 아마도 내무성 산하의 정치준군사조직인 보안부대(KBW)가 맡게 될것이다. 7만7천명에 이르는 보안부대병사는 군징집병중에서철저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다.
그러나 설령보안부대가 기꺼이 계엄을 집행하는 경우에도 무력사용으로 과연 사태가 진정될수있을까는 의문이다.
아뭏든 비상사태가 선포됨으로써 폴란드민주개혁의 소득은 대부분 원점으로 돌아갈 위기에 놓이게됐다. 「야루젤스키」쪽을 보더라도 군정이란 마지막 카드를 내놓음과 함께 사태는 그의 손에서 떠난셈이된다. 지금까지의 예로 봐 최소한 폴란드 노동자들의 일부는 계엄에 관계없이 파업등으로 저항할 공산이 크기때문이다.
「야루젤스키」가 비상사태선포연설에서 폴란드의 민족의식을 강조한것과 「바웬사」를 체포하지않고 선무에 이용하려는것등은 이같은 위험을 의식한 때문이다.

<바웬사를 볼모삼아>
한편 이번사태의 또하나의 관심사는 소련의 개입가능성이다. 현재론 군사개입가능성은 비상사태선포로 예전보다 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16개월동안 모든 사람의 예상을 깨고 군사개입을 삼갔던 소련이 「야루젤스키」가 국내에서 가능한 최강경대책을 취한 지금 움직일리는 없다는 분석이다.
오히려 그들은 「야루젤스키」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으며, 「야루젤스키」도 이같은 효과를 노려 비상사태선포란 고육책을 썼다고 볼수있다.
침공예방을 위한 일종의 초토작전이란 얘기다.
그러나 이것 역시 노동자들의 움직임에따라 변할수 있다. 총파업을 호소하는 코뮈니케가 이미 나돌고있는만큼, 유혈사태가 벌어지고 이것이 내전으로 확대될경우 소련은「어쩔수없이」끼여들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정춘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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