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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주한 외국 기업인 투자의향 조사] 미군 감축보다 대북 군사제재 더 민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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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동아시아연구원(EAI)이 주한 외국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임원진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는 한국에서 안보와 투자의 상관 관계를 손에 잡힐 듯 보여 준다. 조사에선 대북 제재의 단계를 (북핵문제의)유엔안보리 상정→대북 경제제재→해상.공중 봉쇄→제한적 군사작전의 4단계로 나눴다. 각 단계에서의 투자 중단 의사를 물은 결과 몇 가지 중요한 특징들이 발견됐다.

첫째, 대북 제재의 강도가 커질수록 투자를 중단.회수하겠다는 비율이 높아졌다.

우선 제재가 미국 단독으로 이뤄지는 경우다. 북핵 문제가 '유엔안보리에 상정'되는 경우 투자를 중단하겠다는 의견이 13%에서 '경제제재가 실행'되는 경우에는 20%로 약간 상승한다.

그러다가 준군사조치라고 할 수 있는 '해상.공중 봉쇄 단계'에 이르면 외국인 투자 기업 가운데 63%가 투자를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는 외국인 기업들이 투자 중단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레드라인(비등점 혹은 임계점)'이 실질적인 군사적 조치가 개입되는 해상.공중 봉쇄 단계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전 단계들인 유엔안보리 상정과 경제제재는 이미 1994년 1차 북핵위기 과정에서 경험한 적이 있어 일종의 면역효과가 형성돼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외국 투자자들은 해상.공중 봉쇄나 제한적 군사작전을 전쟁 위험성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 단계에 이르러서 투자 중단이나 자본 회수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대북 제재 조치가 한.미 공조 아래 진행되는 경우다. 이때 투자 중단이나 회수 의사의 비율은 미국 단독일 때보다 5~10%포인트 낮게 나타났다.

대북 제재가 한.미 공조 차원에서 이뤄질 때 외국 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위협을 덜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한.미 동맹이 안보위기 때 발휘하는 일종의 '경제효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수준이 5~10%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일단 안보위기가 발생하면 한.미 동맹의 투자위축 방지효과는 엄연히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한.미 공조로 진행된다 해도 해상.공중 봉쇄(53%)나 제한적 군사조치(68%) 때 투자를 중단하겠다는 응답 비율이 상당히 높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감축이 외국인 투자 기업의 투자심리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현재 3만7000명 수준인 미군이 2만3000~2만5000명으로 줄어들 경우→1만4000~1만5000명으로 줄 경우→상징적 병력만 남기고 사실상 철수할 경우 등 3단계를 상정해 물어 봤다.

한국과 미국은 2007년 말까지 주한미군 1만2500여 명을 감축해 주둔군을 2만5000명 선에서 유지키로 합의한 상태다. 이럴 경우 외국인 투자 기업의 8%만이 투자 중단 의사를 밝혔다.

여기에 1만여 명이 추가로 축소돼 주한 미군 병력이 1만4000~1만5000명 선이 될 경우 투자 중단 응답 기업은 16%로 늘어났다. 상징적 병력만 남기고 사실상 철수하는 경우에는 그 비율이 무려 39%로 급증했다. 결국 상징적인 수준의 미군 주둔은 주한 외국기업인을 크게 불안하게 할 것이란 뜻이다. 따라서 주한미군 감축과 관련, 외국인 투자 기업들이 투자 중단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레드라인은 '상징적 주둔' 단계에서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결론적으로 주한미군 감축 상황보다는 대북 제재 이슈가 외국인들의 투자결정에 더 민감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주한미군의 감축은 한.미 간 적지 않은 불협화음에도 불구하고 상호 협의 아래 추진되고 있는 예측 가능한 현상인 반면에, 대북 제재는 북한의 의도와 북.미 간 긴장관계에 의해 확대될 수 있는 불확실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에서 두 종류의 레드라인, 즉 ▶주한미군의 주둔 규모가 상징적인 수준으로 축소될 때▶대북 제재가 시작돼 해상.공중 봉쇄가 벌어질 때가 외국인 투자 기업들이 투자를 중단하는 결정적 시점일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정부는 초기 대응 과정에서 위기상황이 외국인 직접투자 회수의 심리적 레드라인에 도달하는 것을 예방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이시영 중앙대 교수(무역학과)
정한울 EAI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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