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환 날았다, 오사카 신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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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 오승환은 일본 데뷔 첫해 39세이브를 올려 한국인 최초로 구원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소속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11일부터 경기를 치른다. [사진 OSEN]

오승환(32·한신 타이거스)을 만나기 위해 지난 9일 일본 오사카 고시엔구장을 찾았다. 앞서 30대 회사원 가고야마 씨를 붙잡고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한사코 사양했다. “한국에서 왔다”는 기자의 말에 “그렇다면 오승환 상(さん)이 내가 하는 인터뷰를 보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오상, 정말 감사합니다. 한신에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몇 번씩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가고야마 씨는 “오상이 없었다면 한신이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갈 수 없었을 겁니다. 오상은 등판하면 승리를 꼭 지켜줍니다. 믿을 수 있는 남자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오사카는 야구 도시다. 직장인들은 출근하자마자 전날 벌어진 야구 얘기를 하고, 퇴근길 선술집에서 야구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신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홈인 도쿄는 야구 인기가 떨어져 걱정이라지만 오사카는 그렇지 않아 보였다. 지난주 끝난 센트럴리그 정규시즌에서 한신이 2위(75승1패68패)를 차지해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하자 야구 열기는 더 뜨거워졌다.

 한신은 1985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라이벌 요미우리에 밀려 78년 구단 역사를 통틀어 센트럴리그 우승도 아홉 번밖에 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역 팬들은 한결같이 한신을 응원한다. 퍼시픽리그의 오릭스 버팔로스도 간사이를 연고로 하고 있지만 지역 야구팬 90%는 한신을 사랑한다.

 지난 겨울 한신은 오승환과 2년 총액 9억엔(약 90억원)에 계약했다. 지금까지 한신은 한국 선수를 영입한 적이 없었다. 일본에서 검증되지 않은 오승환에게 너무 많은 돈을 줬다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오승환은 데뷔하자마자 센트럴리그 구원왕(39세이브 2승4패, 평균자책점 1.76)에 올랐다. 선동열(1996~1999년 주니치)과 임창용(2008~2012년 야쿠르트)도 하지 못한, 일본 최초의 한국인 구원왕이 된 것이다. 39세이브는 외국인 투수 첫 시즌 최다 기록이다.

 오승환의 활약은 기록에 나타난 것 이상이다. 나카니시 기요오키 한신 투수코치는 “일본 마무리 투수들은 1이닝만 던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승환은 8회라도 팀이 원하면 언제든 던진다”면서 “정말 터프한 선수다. 오승환이 없었다면 리그 2위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라이트는 9월 26일부터 10월 1일까지 이어진 5경기 연속 등판이었다. 이 기간 오승환은 실점 없이 세이브 3개를 올렸는데, 그 중 두 개가 2위 자리를 다투던 히로시마를 상대로 거둔 것이었다. 가장 중요할 때, 가장 힘들 때 오승환이 던진 ‘돌직구’는 한신 팬들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일본은 마무리 투수를 극진하게 예우한다. 일본 특유의 세밀한 야구는 마지막 1~2점을 지키는 게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만의 신(神)을 가진 나라답게 뛰어난 마무리 투수를 수호신(守護神)이라 칭하며 떠받든다. 한신의 자랑 후지카와 규지(34·미국 시카고 컵스)와 이와세 히토키(40·주니치) 등 당대 최고 마무리들은 투수 최고 연봉을 받았다. 한국·미국의 1선발이 받는 대우를 일본에선 마무리 투수가 누린다.

 오승환이 한신에 입단해 등번호 22번을 받았을 때 팬들은 의아해 했다. 많은 연봉에다 후지카와의 등번호까지 줄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이었다. 게다가 오승환이 삼성 시절 47세이브(2006·2011년)로 한 시즌 아시아 최다 기록을 세웠다는 것도 탐탁해 하지 않았다. 후지카와의 46세이브(2007·2011년) 기록을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오승환의 한 시즌을 지켜본 팬들은 그를 ‘한신의 수호신’이라 부른다. 후지카와의 등번호 22번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고시엔구장 용품점 한가운데엔 오승환 유니폼이 걸려 있다. 기자가 구장을 돌아다니자 일본 기자들이 먼저 다가와 “오승환을 취재하러 왔느냐”며 안내를 해줬다. 재일동포 서동일 씨는 “오승환 선수가 한국 야구의 실력을 보여준 것 같아 자랑스럽다. 일본 사람들이 오승환 선수를 참 좋아한다”고 말했다.

 오사카에 오승환 열풍이 불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담담했다. 오승환은 “더 잘했어야 하는데…. 선동열 (KIA) 감독님과 비교하는 기사가 많이 나오지만 나는 선 감독님을 따라가려고 노력할 뿐”이라고 말했다. 팀에 헌신적이라는 평가에는 “일본 투수들은 2이닝을 던지거나 연투할 생각을 별로 하지 않더라. (코칭스태프가) 구분을 두기도 하고…. 나는 한국에서 했던 대로 던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신은 지난 28년 동안 일본시리즈 우승에 실패했지만 항상 우승을 꿈꾼다. 오승환이 뒷문을 지키는 올해는 확률이 더 높다고 믿는다. 11일부터 히로시마와 벌이는 클라이맥스 시리즈 1스테이지(3전2선승)에서 이기면 요미우리와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스테이지(6전4선승·1위 요미우리가 1선승)를 치른다. 여기서 승리해 일본시리즈(7전4선승)에 진출하면 퍼시픽리그 1위인 소프트뱅크 4번타자 이대호(32)와 만날 수도 있다.

오사카=온누리 JTBC 기자

39세이브 올려 외국인 첫 해 최다
연투에 8회에도 등판, 팬들 환호
한신 코치 "그가 뒷문 지켜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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