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공사 노트북 빌려 감사하다 조사문건 통째로 유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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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3월 철도공사(전 철도청)의 러시아 유전인수 투자 의혹에 대한 감사원 감사 때 왕영용 당시 사업개발본부장의 진술내용이 철도공사 감사실장 등에 의해 조사를 앞두고 있던 김세호 당시 건설교통부 차관(구속)에게 전달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은 31일 "철도공사 감사실장과 직원 등 2명이 왕씨에 대한 감사원의 문답조서가 들어있던 감사원 직원의 노트북 디스켓을 복사해 김 전차관에게 전달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검찰은 김 전 차관이 이 문건을 전달받은 시기는 감사원 조사(4월 5일)와 검찰 조사를 앞둔 3월 말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신광순 전 철도공사 사장(구속)도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자료를 건네받은 단서를 포착, 사실 여부를 확인 중이다. 검찰은 철도공사 감사실장 최모씨와 직원 등 2명을 감사원법 위반 및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또 감사 자료 유출에 책임이 있는 감사원 직원들에 대한 처리 방침은 추후 결정하기로 했다.

한편 철도공사는 검찰 수사를 앞두고 기획조정본부장의 지시로 컴퓨터 디스켓 파일을 삭제하는 등 유전 사업 관련 자료를 무더기로 폐기한 바 있어 조직적으로 증거를 은폐하려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허술한 노트북 관리가 원인=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수사팀이 5월 9일 김 전 차관 자택에 대한 2차 압수수색을 할 때 왕씨의 문답서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이 문건은 감사원 관계자들이 철도공사 서울사무소에서 실시한 방문조사 때 왕 전 본부장을 조사하면서 작성했던 40~50쪽 분량의 문서로 철도공사의 유전사업 진출 과정 등이 담겨져 있다.

검찰은 이 감사원 문건이 김 전 차관 집에서 발견된 점을 중시, 유출경로를 추적한 끝에 철도공사 감사실장과 감사관실 5급 직원 등 2명이 감사원 직원의 노트북 컴퓨터에 들어 있던 디스켓을 빼내 복사한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이들이 며칠 뒤에는 감사원 직원의 노트북 컴퓨터 본체에 저장돼 있던 감사 자료도 몰래 빼내 복사한 사실을 밝혀내고 이 문건이 누구에게 전달됐는지를 조사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감사원 직원들이 디스켓이 든 노트북을 감사장의 책상 위에 두고 퇴근하는 등 감사자료를 허술하게 관리한 것이 중요 문서 유출사고의 원인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 감사원은 "캐비닛에 넣어 보관"=감사원의 감사 서류가 피감사 기관 직원들에 의해 유출된 것으로 확인되자 감사원 측은 "이런 일이 발생할 것으로는 상상도 못했다"며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감사원 측은 "조사내용이 담긴 디스켓을 감사장 내 캐비닛에 보관했으나 철도공사 직원들이 캐비닛의 잠금장치를 열고 디스켓을 빼낸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의 조사결과와 다른 주장을 했다.

감사원은 또 "유출된 문건은 지난 3월 10일께 왕 전 본부장을 상대로 한 문답의 초안"이라며 "최종 문답 내용은 아니다"고 말했다.

조강수.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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