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1)제75화 패션 50년(62)|패션얘기를 끝내며|외국패턴 복사아닌 독창적 작품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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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애초 내가 디자인 공부를 하고 패션계에 종사하면서 늘 품어온 생각은 양복장이라 천시 받아온 디자이너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서는 학식과 기술을 고루 갖춤으로써 자격있는 후배들을 길러내는 길밖에 없다는 일념이었다.
더욱 섬유 패션산업이 국가수출기간 산업으로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게 된 지금 한사람의 의상디자이너로서, 또 패션 디자인 교육자로서 내가 할 일은 보다 고급한 기술인력을 길러내는 일밖에 달리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국제복장학원이 수많은 신예 디자이너들을 배출해냄으로써 우리나라 패션산업의 기초과정에 자그나마 한몫을 했다면 이제는 세계와 어깨를 겨룰 하이 패션의 실력자들을 키워낼 단계가 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패션 선진국으로부터 주어진 패턴을 그대로 카피해내는 보세가공공장 노릇을 하는 일도 이제는 한계점에 달한 것 같다.
패션 선진국의 디자인을 그대로 모방하는데 머물던 디자인 부재 상황을 극복하려면 우리의 전통문화를 고도로 승화시킨 독창적인 작품을 세계시장에 내놓는 길 뿐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패션디자인만을 전문으로 하는 연구교육기관이 있어야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세계에서 패션 선진국으로 일컬어지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서독 일본등은 같은 질의 제품을 우리나라보다 3배 이상의 값으로 세계시장에 내고 있는데 이런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패션디자인 전문 연구교육기관은 우리나라에 비해 수십배가 넘는 규모라니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도 최근 몇년동안 패션디자인 계통의 전문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 나머지 각 대학에 섬유학과나 의상학과가 설치되는등 뒤늦게나마 희망적인 움직임이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시간을 다투는 세계수출시장의 수요를 채우기 위해서는 학문적 이론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기술면을 체계적이고 집중적으로 가르침으로써 하루 빨리 명실상부한 고급인력을 키워내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
그래서 나는 이와 같은 확신으로 80년7월 재단법인 국제 패션 디자인연구원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각 대학에서 섬유·의상학이나 미술을 전공한 학사들을 받아들여 보다 깊고 넓게 패션 디자인의 모든 것을 공부할 기회를 열어줌으로써 섬유패션업계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일꾼을 키워내려는 목적에서였다.
이미 대학에서 기초과정을 이수한 이들이므로 패션디자인, 패션아트, 패션비즈니스등 패션에 관한 모든 것과 입체재단, 피복구성, 피복재료학, 도안과 날염, 색체학, 그리고 마키팅 리서치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디자이너로서 일하는데 필요한 모든 지식과 기술을 교과목에 넣고 있다.
이 연구원의 설립은 비록 보잘 것 없는 작은 힘이나마 50년 가까이 오직 이 나라의 패션 디자인계에서 일해온 내자신의 생을 마무리하는 일종의 정리작업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 것이기도 하다.
피아니스트의 꿈을 꾸며 음악학교 재학중 집에 화제가 나는 불의의 재난으로 인해 뜻 아니한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섰지만 한번 택한 길에 최선을 다한다는 오직 그 한마음으로 오늘까지 살아 왔다.
그동안 주변에서 내게 도움을 주신 많은 고마운 분들-. 가까이는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로부터 동료·친지에 이르기까지 잊을 수 없는 얼굴들이 일일이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이 계시다.
이러한 분들에게 대한 고마운 인사에 갈음하듯 그동안 살아온 디자이너 최경자의 이야기를 자전적 패션연감 형식으로 묶어본 것이 이 연재를 끝내는 오늘 한권의 책이 되어 내 손에 쥐어졌다.
그리고 내가 못 다하고 가는 일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제자들과 나란히 패션계에서 일하고 있는 나의 네 아이들- 혜순(디자이너 국제패션 디자인연구원 부원장) 현우 (패션전문지「의상」사 사장)혜옥(재미디자이너) 현장 (수출의류메이커「와라」실업사장) - 이 이어주리라 생각하면 끝없는 감사를 느낀다.
무슨 일이든 당대에 성공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대를 이어 발전해 가는 것이야 말로 더욱 값진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암하세천 달해의, 주전우수 위천심.
(바위아래 흐르는 작은 샘은 바다에 이르려는 것이 뜻이요, 뜰앞의 작은 나무는 하늘을 찌르고자 함이 소망이라)이 막시는 내 어릴적 아버님께서 좌우명으로 써주신 것이다.
한평생을 바다에 이르려는 작은 샘처럼, 하늘을 찌를 듯 크게 자라려는 어린 나무처럼 오직 성실한 마음으로 한 길만을 바라보며 살아왔지만, 생의 황혼을 바라보는 지금 바다는 아직도 멀고 하늘은 더욱 높게만 여겨지니 어인 일일까. <끝>
※다음 회부터는 월전 장우성화백의 『화맥·인맥』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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