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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식 기자의 새 이야기 ⑧ 물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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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도 하늘을 날지. 날치? 그건 포식자에 쫓겨 잠시 튀어 오른 거구. 이건 달라. 까마득히 사라지는 고공비행. 그렇다고 세상에 없던 신종 출현은 아니야. 무시로 볼 수 없어 아쉬워.

하늘과 강이 푸른 빛깔로 한통속이 되는 계절. 날개 없는 것들의 유별난 비행은 이 가을에만 벌어져. 날개 없이 날 수 있는 새로운 세상, 생존의 필살기가 없어도 행복한 세상. 그 일탈의 꿈을 현실로 이끄는 마법사는 물수리야. 그의 출현은 꼭 이맘때지.

행운은 누구 편일까? 숭어를 움켜쥔 물수리? 난생처음 아찔한 하늘 아래 세상을 굽어보는 숭어? 무임승차는 없어. 7할의 실패를 인내해야 하는 물수리에게도, 마지막까지 피 흘리는 고통을 견뎌야 하는 숭어에게도. 허황된 것에 눈길 둘 일이 아니야. 그 운명적 만남, 결정적 순간을 단단하게 움켜쥐면 돼.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 머물지 않는다지? 가을은 짧고 겨울은 혹독해. 먼 북녘에서 서둘러 남하한 물수리의 날개 깃이 해져있어. 동면을 앞둔 잉어는 몸피를 불려야 하고, 산란을 마친 숭어는 더 깊은 바다로 헤엄쳐가야 해. 누구에게나 할 일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지.

우리에겐 낡은 날개도, 깊은 물속을 들여다보는 눈도 없지. 행운 따위는 필요 없어. 햇살 빛나는 강가에 나가 가을바람을 맞아보는 거야. 따스한 햇살에 눈이 감기면 어느새 우리는 파란 하늘 위로 둥실 떠올라. 잊고 있던 소중한 순간이 하나하나 새로울 거야. 몸을 던졌던 그 열정이 식지 않게 깊은숨 쉬어봐. 떨어져 흘러가는 단풍처럼 아픈 것은 그냥 흘려보내. 찬란한 이 가을은 추억하기도, 추억을 만들기도 짧기만 한데….

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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