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섬' 제주도에 반해 1982년 카메라 하나 둘러메고 홀로 제주도에 정착한 그는 99년 병원에서 루게릭병(신경세포가 파괴돼 근육을 쓸 수 없게 되는 병) 진단과 함께 4년 시한부 삶 판정을 받고도 최근까지 작품 활동을 해왔다.
제주도 산간 마을의 한 폐교를 개조한 그의 사진갤러리 '두모악'(dumoak.co.kr)에 29일 오전 9시쯤 직원이 출근했을 때 그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고 한다. 직원 박훈일씨는 "1주일 전부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28일엔 미음도 넘기지 못했다"고 전했다. 늘 혼자였던 그는 임종을 지켜본 이도, 유언도 없이 그렇게 혼자 갔다.
그가 23년간 찍은 사진은 7만 장에 이른다. 한라산과 중간산, 제주의 오름(기생화산), 주변의 억새, 노인과 해녀, 마라도 등 제주의 모든 것들이 그의 표현 대상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17차례의 개인전을 열었지만 누구를 초대하지도 않았고 작품을 팔지도 않았다.
그는 병이 악화된 뒤로는 폐교를 갤러리로 탈바꿈하는 일에 매달려왔다. 이 갤러리는 지금 제주의 숨은 명소가 됐다. 벼락맞아 버려진 감나무 밑동을 옮겨 심어놨더니 새싹이 돋아났다며 좋아했던 게 2년 전 여름이다. 걸음을 옮길 수 있을 때면 늘 감나무 곁으로 간다고 두 달 전쯤 그는 전화로 말했다.
저서로는 사진 에세이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가 있다.
빈소는 남제주군 성산읍 삼달1리 두모악 갤러리에 차려지며 발인은 31일 오전 10시다. 064-784-9907.
손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