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두 얼굴의 경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김승현 사건사회부 기자

만화영화 '마징가 제트'에 백작으로 등장하는 아수라는 얼굴의 좌우가 달라 한쪽에서 보면 악한이고, 다른 편에서 보면 선하게 보이는 존재다. 인도 신화에 근거한 그의 존재는 세상에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최근 경찰이 이런 두 얼굴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쪽에서는 시위대에 뭇매를 맞고, 다른 한쪽에서는 철거민에게 상상조차 안 되는 방법의 폭력을 사용한 것이다.

울산 건설플랜트 노조의 시위 현장에서 한 의경이 무방비 상태에서 시위대의 쇠파이프에 매질을 당하는 사진이 지난 18일 언론에 공개되자 경찰에 대한 동정 여론이 크게 일었다. 시민들은 노조의 폭력성을 비난하며 경찰의 고충에 귀 기울였다. 허준영 경찰청장도 이 시위로 두 달 동안 100여 명의 전.의경이 부상한 울산을 지난 26일 방문했다. 경찰 가족들을 위로함과 동시에 "불법 폭력 시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히 대처하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경기도 화성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대형 새총을 만들어 시위 중인 오산 지역 철거민들에게 골프공을 쏜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경찰들은 "철거민들을 자극해 그들이 새총으로 쏘는 골프공을 소진시키려 했다"며 어처구니없는 변명을 했다. 그리고 28일에는 경찰관들이 철거민을 향해 골프채로 골프공을 날린 것이 감찰을 통해 확인됐다. 동료 경찰관들조차 어이없어 할 정도다.

경찰 수뇌부는 이 같은 사태가 창립 60주년을 맞아 인권을 최우선으로 하는 '뉴 폴리스'로 거듭나겠다는 대국민 선언에 흠집을 줄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최근 본지 여론조사에서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검찰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는 등 한껏 고무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한쪽에서 기껏 점수를 따면 한쪽에서 다 까먹는다"고 푸념했다. 울산 시위 현장의 경찰들은 동료가 폭행당했다는 사실만큼이나 '골프공 새총'소식에 맥빠져 했을 것이다.

국민은 경찰이 시위대에 집단 폭행을 당하는 것도, 철거민에게 골프공을 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언제나 당당하고 정당한 공권력을 사용하는 진정한 '뉴 폴리스'를 기대하고 있다.

김승현 사건사회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