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자녀교육의 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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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윤상군 유괴살해범이 밝혀진 후 우리 앞에는 여중·고생의 도덕적 현실이 또 하나의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학교에서의 순결교육이나 도덕교육에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물론 학교교육만의 문제는 결코 아닌, 가정이나 사회교육의 책임도 크다. 여중·고생의 순결교육, 가정 교육, 과외생활지도의 현주소와 그 문제점을 진단해 보는 대담시리즈를 마련한다.
【편집자주】
박=선생님, 저는 윤상군 유괴살해범 주를 교사이기 이전에 모든 면에서 완전히 타락한 정신결함자로 보고싶어요. 주의 범죄에 대해 뭐라 덧붙이기조차 싫어집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노출된 또 하나의 현실, 범죄에 함께 가담했던 이모양이나 고모양의 문제는 꼭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도 중·고등학생들에게, 순결교육이 실시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점 재고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김=순결교육뿐만 아니라 교육적인 현실에서 재고해보아야 할 점은 너무나 많지요. 순결교육도 단순한 성교육이 아니라 윤리나 도덕을 기본바탕으로 가르쳐야 마땅하다는 점에서 도덕 교육이나 윤리교육이 보다 시급한 것으로 봅니다.
박=우리나라에서 성교육이라 부르지 않고 순결교육이라 부르는 그 자체가 도덕적인 요소를 포함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의 집에도 중학2학년인 딸이 있어요. 학교에서 생물시간이나 가사시간에 생리를 중심으로한 순결교육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단순한 생리이야기 보다는 심성의 교육이 추가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어요. 이 순결교육이 여자고등학교의 경우는 어떤가요.
김=중학보다 훨씬 더 신경을 씁니다. 학교마다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순결교육을 실시하고 있지요.
1주일에 2시간씩 있는 건강교육안에 순결교육이 포함되기도 하고 우리의 경우 교양시간을 따로 두고 여기서도 순결교육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순결교육이란 뜬구름 잡는 식으로 해서는 안되지요. 보다 구체적인 설명과 구체적이고 솔직한 대화가 있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어서 상담중심으로 교육을 펴나가야만 합니다. 특히 방학때면 학년단위·학급단위·그룹단위·개인단위등의 상담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대화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니까 앞으로 우리나라는 전교사의 상담교사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박=전에는 없었던 순결교육이 현대에 들어 그 필요성이 생긴 것은 그만큼 시대와 사람이 변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내가 아는 어느 여자고등학교 남선생 한분은 5년 동안의 교직생활을 버리고 다른 직장으로 옮겼읍니다. 옮긴 직장이 학교보다 좋은 곳은 아니었어요. 직장을 옮기면서 『여학생들의 노골적인 사랑의 고백에 혐오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을 했어요. 그만큼 요즘 여학생들은 대담해졌다고 할까요.
김=남녀문제에 대해 대담해지고, 그래서 말썽을 부리는 학생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고생들이 남자선생을 좋아한 것은 옛날에도 있었던 일입니다. 그것이 요즘와서 숫적으로 늘고 있으며 보다 대담해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 볼 문제는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대부분의 학생이 결손가정의 학생이라는 것입니다. 사회에 그만큼 불우한 가정이 늘어나기 때문에 문제학생도 늘고 있다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문제학생은 학교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나 사회에서 생기는 것이라 볼 수 있지요. 학교에서 아무리 교육을 잘 시킨다해도 문제가정이 늘어나면 문제학생도 늘어나고 또 이들에게 TV·라디오의 비현실적인 드라머들이나 성문제를 노골적으로 다루는 각종 매스미디어들이 있어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읍니다.
기간이 가장 긴 겨울방학동안 학생들에게 문제가 많이 일어나는 것도 학교를 떠나 가정이나 사회에서 생활하는 기간이 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95%이상의 학생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정상적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지요.
박=어느 시대든 「잃어버린 양」들이 문제가 되는 법이지요. 그런데 그 「잃어버린 양」의 수가 늘고 있으며 그들이 일으키는 문제가 보다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여자대학교의 의식조사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라면 모든 것을 바쳐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문도 열 수 없다』는 결론이 대다수 학생에 의해 나왔습니다. 이 정도의 의식수준이라면 아직 믿어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김=하지만 여자대학생의 숫자란 같은 연령의 세대에 비해 0.3% 정도에 불과하지요. 그밖의 여성들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박=사실 학교 밖에서 펼치는 성교육이란 어쩌면 피임교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회에서 성교육을 곧 피임교육으로 알고있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피임이란 성교자체를 전제한 것이기 때문에 학교의 순결교육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산업화에 따른 사회의 이 같은 변화말고도 서구사조의 무조건 도입도 문제의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요. 자유로운 남녀교제 같은 것 말입니다.
김=자유로운 남녀교제를 권하는 것은 오히려 권장할 일이라 생각해요. 나는 손자의 생일 같은 때 걸프렌드가 있으면 부르라고 합니다만 오히려 손자측에서 싫다고 해요.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해도 내 손자에게 동양적인 의식의 흐름이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갖습니다.
박=우리집 딸애도 『애들이 흉본다』면서 좀체 남자친구를 부르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디 갔다 늦게 들어올 때면 할머니가 골목 끝 큰길에서 꼭 전화하라고 당부해 놓았기 때문에 전화를 걸고 마중을 나가면 함께 집에 들어오게 되지요.
제 생각에는 좀 과잉보호라 생각됩니다만.
김=요즘 같은 세상에는 보호할 필요가 있어요. 이번 사건의 이양이나 고양의 경우도 부모가 관심을 가지고 관찰해 왔다면 문제가 없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특히 남녀관계는 부모의 입장에서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또 한가지 생각해볼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청소년아동에 관한 사건이 일어 날 때마다 모두 입을 모아 사회의 책임이다, 부모나 가정의 책임이다, 또는 학교의 책임이다 등으로 책임을 따집니다. 물론 당연한 말이지요. 그런데 막상 잘못을 저지른 주인공은 이 모든 책임들 때문에 스스로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는 것으로 결론을 짓기가 쉬워요. 사실은 본인에게 더 많은 책임이 있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박=스승과 제자 관계의 분명한 어떤 선, 그것도 강조되어야 할 것 같아요. 요즘 학생과 스승 사이에는 너무 스스럼없고 어려워하는 것이 없어요.
김=그렇습니다. 거리감을 갖는 것과 어려워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뜻이지요. 거리감은 갖지 말되 제자는 스승을 어려워해야지요.
박=바로 그것이 존경과도 통하는 것 같아요. 국민학교 어린이들도 어떤 스승이 좋은가를 구별할 줄 압니다. 스스로 존경받을 수 있는 스승이 된다면 학생들도 어려워할 것입니다.
김=거리감을 없애는 방법으로 가정방문을 권할만 합니다. 그러나 무슨 사건만 일어나면 교육계가 욕을 먹고, 이 때문에 학부모의 불신이 쌓이고 그 불신의 벽을 깨뜨리기가 지금은 무척 어려워요.
마지막으로 한마디하고 싶은 게 있어요. 아까도 책임문제를 말했지만 이번 일의 책임은 범인 주가 이전에 말썽을 일으켰던 C학교의 당시 책임자에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시 책임자들이 모두 사표를 내긴 했읍니다만.
주의 비위사실을 알았을 때 다른 곳으로 전출시킬 것이 아니라 자격박탈을 시켰어야 했어요. 인심잃기 싫어하고 원수지기 싫어하는 결단력과 용기없는 현대인상에도 수정을 가할 때 가 된 것 같습니다.

<정리 김징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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