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7)패션50년(58) 제75화|중고생 교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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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70년대 후반에는 중·고등학생들의 교복에 대한 폐지론이 대두되어 사회전반에 걸쳐 찬반의견이 활발하게 오갔다.
물론 1960년대에도 5·16혁명으로 인한 신생활복운동의 여파로 여대생들에게마저 교복을 입히자는 발상이 나온 적도 있지만 교육행정의 최고책임자인 문교부장관이 아예 중·고등학생들의 교복을 폐지하겠다는 단안을 내렸던 것은 77년 황산덕 장관때 일이다.
그동안 교육계에서는 지금 중·고등학생들이 입고있는 교복과 교모가 일본 식민지시대의 잔재이며 특히 교모까지 쓰게하는 것은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이유로 여러번 폐지론이 제기되어왔고 그때마다 사회각계에 걸쳐 찬반논쟁이 일었었다.
교모는 78년부터, 교복은 학부모들의 부담을 고려해서 단계적으로 실시한다는 황장관의 폐지결정은 『쓸데없는 일을 벌이려 한다』는 당시 박대통령의 질책으로 백지화되고 말았다.
이처럼 우리 교육계의 오랜 현안문제인 교복폐지론이 다시 고개를 든 것은 10·26직후 김옥길장관때 의해서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교육계 내부의 반대에 부딪쳐『교복과 교모는 머리스타일 문제와 함께 학교장의 재량에 맡긴다』는 정도로 끝나고 말았다.
이같은 결정에 따라 주로 사립인 일부 학교들은 교모를 폐지하고 교복도 현대감각에 어울리는 새로운 스타일과 색상으로 새로 제정하는등 폐지까지는 못돼도 나름대로 개선하는 노력을 보였다.
개중에는 남학생들에게 빡빡머리 대신 스포츠형으로 약간 머리를 기르게 하거나 여학생들에게 단발일변도에서 숏커트 스타일을 허용한 학교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대다수의 학교들은 불편하고 구태의연한 스타일과 흑백만의 단조로운 색상의 교복을 그대로 고집하고 있는 형편이다.
나는 결코 교복을 아예 없애자는 교복 폐지론자는 아니다.
그러나 디자이너라는 내 직업상 오래전부터 여학생들의 교복에 많은 관심을 갖고 내 나름대로 교복 개조에 대해 연구해왔다.
60년대에 보다 합리적인 교복개량의 움직임이 일어나자 새로운 교복 디자인을 의뢰받고 전국여중·고교장회의가 열린 경기여고강당에서 내가 권하고 싶은 교복샘플을 여학생들에게 입혀가며 디자인의 특징이나 장점을 설명한 일도 있다.
지금 금난여고생들이 입고 있는 교복도 내가 디자인한 것으로 허리가 꽉 죄고 가슴이 강조된 현행 여고생 교복 상의가 한참 성장기에 있고 활동력이 많은 여학생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행동에 제약을 주는등 불편한 점이 많다는데 착안해서 우선 움직이기 편하고 여러해 입는 동안 몸이 자라도 지장이 없도록 여유가 있으면서도 여학생다운 귀여운 멋을 살릴수 있게 점퍼 스커트로 만든 것이었다.
지금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60년대 당시 교복디자인으로는 매우 새로운 스타일이어서 금난여고생들은 다른 학교 여학생들의 부러운 눈길을 모았고 『교복이 예뻐서 금난에 들어왔다』는 신입생들도 꽤 많았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지금 중년이된 분들도 잠깐 회상해보면 여학교 시절 교복 때문에 신경썼던 일들이 기억날 것이다.
스커트나 바지주름을 세우려고 밤마다 이불 밑에 깔고 자고 소매가 구길까봐 버스에서도 높은 손잡이를 잡지 않은채 몸의 균형을 잡느라 애쓰던 경험은 교복을 입어본 누구에게나 공통된 추억이다.
몸도 마음도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자라고 한창 아름다움에 민감할 나이의 청소년들을 불편하고 멋없는 지금의 교복속에 계속 가두어 둔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
그리고 그 이유가 기껏『교복을 없애면 학생들의 과외지도가 어렵다』는 식으로 우리자녀들을 문제아나 범죄자로 취급하는 사고방식 때문이라면 더욱 곤란한 일이다.
그렇다고 일부 학부모가 걱정하는 것처럼 아예 교복을 없애버려서 빈부격차가 드러날 우려가 있는 사복을 허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늘날 이만큼 발전한 우리 현실에 꼭 맞는 값싸고 보기 좋고 입기 편한 새로운 옷으로 바꿔 입히자는 이야기다.
통학시 만원버스에서 떨어져 나가기 일쑤인 단추 대신 편리한 지퍼가 달린 방수처리된 스키파커나 신축성 좋은 티셔츠, 혹은 스웨터에 질기고 활동적인 청바지를 어느 학교 겨울철 유니폼으로 택해서 안되란 법은 없지 않을까.
학부모 부담도 지금의 교복보다 오히려 적어질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겠다.
어른들은 보기 좋고 입기편한 옷을 입고 있으면서 유독 청소년들에게만 계속 수십년전의 옷을 입으라고 강제한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온당치 못한 일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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