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시 짓기 운동 정완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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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새벽6시 부산 여숙에서 눈을 떴다. 조반도 드는둥 마는둥 허둥지둥 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인의 호주머니 형편으로는 좀 과중한 새마을호의 표를 샀다.
오후 2시에 있을 중앙시조 제2기 수료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빠르다는 새마을호 열차가 내 생각 속에서는 꽤 그리 더딘 것인지? 몸은 차실에 있는데 마음은 벌써 서울에 닿고 있었다.
한여름에 시작된 시조창작강좌가 1기, 2기 수강생을 내보내는 동안 여름도 가고 가울도 가고, 겨울의 문턱으로 접어들었다. 이 일에 씨뿌리고 매가꾸는 호미잡이가 되어 외로운 이랑을 밟고 섰던 필자는 이제 겨우 박전을 일구어 한됫박의 곡식을 거두어 돈 노농의 심회이랄까? 남모르는 포열에 젖어 보기도하는 것이다.
지난 10월25일, 화톳장을 깔아놓은 듯 가을볕이 곱고 다양했던 경복궁 넓은 뜰에서 열렸던 중앙시조 백일장, 그것은 중앙일보의 시조캠페인이 땀흘려 가꾸어 놓은 반마당 「풍작」이었다. 소리 없는 격양가가 들려오는 들판이었고, 파도 없이 밀려오는 만선어장이었다. 이 일이 5년, 10년후엔 이 품계석 아래서 어떤 명인이 배출될 것인지? 늙은 종지기의 심정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백일장이 타작마당이라면 강의실은 씨뿌리는 돌밭이랄까. 타작마당에 수확에 대한 기대와 흥분이 있다면 씨뿌리는 이랑에는 조용한 희열과 싹트고 움트는 가슴, 잔물결 오가는 금싸라기같은 미소가 감도는 것이다.
『선생님의 강의시간을 늘 친정에 가듯 그러한 소망, 그러한 위안으로 간다』는 사연과 더불어 자신의 작품을 보내오는 초로의 부인이 있는가 하면 『우리의 나라시를 편견과 모멸로 대해왔던 것이 후회스럽다』는 국문과 학생도 있다.
마디가 굵고 옹이가 심한 동구밖 상수리나무같은 노인의 작품이 있는가하면 밥솥에서 구수한 김이 오르듯 정감에 젖어드는 주부의 작품이 있고, 두엄냄새 물씬 풍기는 농부의 작품이 보내져 왔는가하면 겨울인데도 화사한 봄동산같은 앳된 소녀의 작품도 놓고 갔었다. 이리하여「시조 교실」4개월은 각박한 세상살이에서 잠시 물러앉은 조그만 날의 시인공화국이었다.
사람의 가슴은 저마다가 갖고있는 저마다의 샘이다. 길지 않으면 샘물은 썩게 마련이지만, 길어내면 길어낼수록 새 물은 솟아난다.
선성과 정의도 퍼내지 않으면 썩게 마련이다. 사회가 각박한 것도, 인정이 메마른 것도, 인심이 거칠어지는 것도, 구경 사람들이 제가슴의 우물물을 퍼올리지 않기 때문이다.
가꾸지 않은 화단에서 어찌 꽃피기를 기약하겠는가. 정치나 종교에 앞서 예술이 보편화돼야 그 시대가 구제받는다는 것은 나라마다의 역사가 증거하고 있다.
하물며 민족사상의 본류인 겨레시(시조)겠는가. 며칠전 신문을 보니 육상경기 한종목을 장려하기 위해 어느 기업인이 억대를 헤아리는 거금을 희사하고 있다.
우리겨레의 심정을 일깨우고 매가꾸는 운동, 「겨레시 짓기 운동」에 앞장서 줄 기업인은 없을 것인가.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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