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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복지 블랙홀, 교육비 90% 삼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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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가 내년 누리과정(만3~5세 무상보육) 중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고 밝히자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어린이를 볼모로 정부를 위협한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지난달 3일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가 ‘복지 디폴트(지급 불능)’를 언급했을 때도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방만한 지방재정 운용 실태를 점검하겠다”고 반박했다.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쏟아낸 무상 복지의 부메랑이 정부와 지자체·교육청 간 대립으로 표출되고 있다.

 최 부총리는 이날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교육청이 부담하기로 지난 정부 때 합의했다”며 “교육감은 어린이집 관련 예산을 편성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방문규 기재부 2차관도 예정에 없던 브리핑에서 “일시적인 재정적 어려움을 이유로 국민 합의에 따라 시행 중인 제도를 되돌리려는 건 문제”라고 거들었다. 기재부는 교육청이 지방채를 발행하면 공공기금으로 1조9000억원어치를 인수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교육감협의회와 야당은 국고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무상 복지는 2010년 진보교육감 후보들이 무상급식을 들고 나온 이후 봇물을 이뤘다. 무상급식 예산은 2010년 5631억원에서 올해 2조6239억원으로 폭등했다. 이명박 정부가 도입한 누리과정을 위한 교육청 부담도 2012년 1조5051억원에서 내년 3조9284억원으로 뛴다. 재원이 쏠리면서 학교 건물 안전을 위한 시설비는 2010년 이후 4년간 9458억원(61.2%)이나 줄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등이 서울시교육청 예산을 분석한 데 따르면 2017년 인건비 등 경상비와 시설비를 제외한 교육사업비 가운데 무상보육·무상급식 등 복지비의 비중이 90.1%에 달할 것으로 추계됐다. 학업능력 향상 등 다른 정책을 펼 재원이 사라질 위기다. 지난 7월 도입된 기초연금 때문에 향후 4년간 시·군·구에서 5조7000억원이 추가로 필요한데, 경기 침체 등으로 세입은 줄어 공무원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곳이 54.4%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무상 복지의 역설을 막을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이봉주 교수는 “급식 기회를 모두에게 주되 형편에 따라 내는 돈을 달리하면 무상은 아니면서도 공정한 설계가 가능하다”며 “보편적 복지를 할 때도 수익자 부담을 넣어 재정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손희준 청주대 행정학과 교수는 “복지 확대 요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므로 정치권부터 신중해야 한다”며 “미국에선 재원 확보 방안이 없는 법률은 제정하지 못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복지 확대를 하려면 증세 논의도 열어놔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성탁 기자, 세종=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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