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손맛으로 만든 ‘정’ 나눠 먹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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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국 한 그릇, 아삭한 김치와 담백한 밑반찬. 엄마가 차려준 밥상엔 값비싼 재료나 특별한 레시피가 없다. 손맛과 정성이 깃들어 있을 뿐이다. 요즘 이런 ‘집밥’을 찾는 이가 많다. 단순히 엄마가 만든, 집에서 먹는 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집밥에는 허기를 달래는 한 끼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요즘 같은 때, 온 가족이 모여 밥을 먹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에 쫓겨 아침을 거른 채 출근하고 저녁에도 야근이 이어진다. 허둥대며 빈 속으로 등교하는 중·고교생들은 밤에는 집 대신 학원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가족이라도 각자의 생활에 치여 함께 식사하기 어렵다. 1인 가구의 증가로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평범한 ‘집밥’이 곳곳에서 화두인 이유다. 방송가에선 JTBC ‘집밥의 여왕’부터 KBS ‘밥상의 신’, 올리브TV의 ‘오늘 뭐 먹지’ 등 집밥을 모토로 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집밥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레시피북과 에세이도 인기다. 각종 매거진들도 집밥에 얽힌 추억 나누기에 빠졌다.

집에서 먹는 것 같은 정감어린 집밥을 컨셉트로 한 식당도 속속 문을 열고 있다. 흔히 ‘백반’으로 불리던 상차림이 깔끔한 1인 트레이에 올려져 기획상품화된 것이다. 식당들은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고 신선한 제철 재료로 음식을 만들면서 매일 세끼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메뉴를 선보인다.

집밥의 감성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늘면서 낯선 이들과 밥을 먹는 모임도 생겼다. ‘집밥(www.zipbob.net)’과 같은 소셜다이닝 사이트를 통해 모여 음식을 해먹거나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한다.

집밥의 박인 대표는 “1인 가구가 늘면서 집밥에 대한 향수가 짙어져 한솥밥을 나눠먹는 커뮤니티가 생겼다”며 “뜻 맞는 사람과 식사하는 문화는 강연을 듣거나 여가 활동까지 함께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집밥 열풍에 대해 ‘배가 고픈 게 아니라 정이 고픈 것’이라고 진단한다. 철학자 강신주 박사는 한 방송에서 “한 끼 때우기 위해 의무적으로 밥을 먹는 것은 사료이고, 한 끼를 먹더라도 감정을 나누며 정성스레 차려 먹는 것이 식사”라고 말했다. ‘집밥’이라는 단어 속에 ‘정성 들여 만든 음식’ ‘마음 맞는 사람과 나누는 건강한 밥상’ 같은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글=한진 기자 jinnylamp@joongang.co.kr
촬영 협조=쌀가게 by 홍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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