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재계 대표 게이단렌 회장 "야스쿠니서 A급 전범 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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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쿠다 히로시 회장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에 대해 일본 각계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그동안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며 숨죽이고 있던 경제계와 정치권 일부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각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우이(吳儀) 중국 부총리가 지난 23일 고이즈미 총리와의 예정된 면담을 일방적으로 전격 파기한 뒤 일본 내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절박함이 번지고 있다.

◆ 경제계 "A급 전범 분사" 촉구=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니혼게이단렌(日本經團連)의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회장은 26일 기자회견에서 "야스쿠니 신사에서 (태평양 전쟁) A급 전범을 분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게이단렌은 한국의 전경련에 해당한다. 도요타 자동차의 회장인 오쿠다 회장은 일 재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는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러 가는 것이지, A급 전범에게 참배하러 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그렇다면 그 안(야스쿠니)에 A급 전범을 포함시켜야 하는지를 다시 고려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오쿠다 회장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문제에 대해 "게이단렌에서 이러니 저러니 말할 입장이 아니다"라며 입장 표명을 유보해 왔다.

일 재계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로 인해 일 기업들이 중국 베이징~상하이 간 고속철 선정 등 큰 사업에서 타격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일 정부는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거세게 반발하는 한국.중국 등의 입장을 고려, 야스쿠니에서 A급 전범을 분사하거나 별도의 전몰자 추도시설을 건립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지난해부터 논의가 사라졌다.

◆ 정치권도 비난 가세=연립여당인 공명당은 26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자제 촉구'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후유시바 데쓰조(冬柴鐵三) 간사장은 이날 "중국과 한국이 싫어하는 것을 꼭 해야만 하는 것이냐"며 "전쟁에서 피해를 본 (중국과 한국 양국의) 국민 감정을 배려해야 한다"며 이같이 결정했다. 공명당은 예전부터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부정적 입장이었다. 그러다 지지자들이 "보다 확실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요구함에 따라 아예 당론으로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집권 자민당의 규마 후미오(久間章生) 총무회장도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전 총리 등 A급 전범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는 데 대해 "패전한 전쟁 당시의 총리를 같이 모시는 데는 저항감이 있다"고 말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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