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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구] 모험 즐기는 진짜 사나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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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난 젊은 시절 '재미'와 '모험'을 꽤나 추구했다. 대학 재학 중엔 모터사이클(오토바이)을 타고 빈번하게 여행했고, 졸업 후에는 스포츠카.요트 등을 즐겼다.

특히 나는 미군 전투기 조종사로서 20년간일했다. 1970~71년에는 베트남전에 참가해 사선을 넘나들면서 각종 위험상황을 겪기도 했다. 당시 적군이 나의 전투기를 공격해올 때엔 '이것 쯤이야! '라고 속으로 되뇌면서 주눅들지 않고 오히려 스릴을 느꼈다.

남들은 나에게 "전시 상황에서 두렵지 않았느냐"고 묻곤 했다. 그때마다 "내가 뭔가를 무서워 했다면 당시 그곳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적의 미사일을 피할 수 있는 나의 비행술과 담력을 생각하면서 나 자신을 대견하게 여겼다"라고 응수하곤 했다.

87년 미국 보잉사의 극동지역 헬기 판매담당자로 한국 땅을 밟은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6년이 지났다. 내 인생에서 40대 이후의 삶을 한국에서 보냈으니 한국은 나에게 제2의 고향이 됐다. 한국인을 아내로 맞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이가 나를 '지한파(知韓派)' 또는 '친한파(親韓派)'로 부르곤 한다.

그동안 한국에서 많은 친구를 사귀었지만 특히 나처럼 스릴을 좇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렸다. 그런 친구 중에 한 명이 이계웅(44.영어 이름 파블로 리) 할리데이비슨코리아 사장이다.

내가 李씨를 만난 것은 그가 미국 유명 모터사이클 제조업체 할리데이비슨의 국내 수입판매사업체인 '할리데이비슨코리아'를 출범시킨 99년이다. 그의 회사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회원사로 가입해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교분이 시작됐다. 우리는 암참이 개최한 각종 자선행사에도 여러번 함께 참여했다.

둘 다 운송.항공 사업을 하고 있다는 점도 관계가 돈독해지는 데 도움이 됐다. 할리데이비슨은 라이트 형제가 첫 비행을 한 1903년 설립된 뒤 대형 고급 오토바이의 대명사로 자리잡았고, 보잉사는 1백45개국에 여객기.헬리콥터를 공급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항공업체다.

우리가 팔고 있는 것은 단순한 운송수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잉과 할리데이비슨이 '자유' '재미' 등의 미국적 가치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는 브랜드이기 때문이다.어찌 보면 난 새처럼 하늘을 훨훨 날고 싶어하는 인간의 꿈을, 李씨는 어디든 여행하며 자유를 느끼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실현시켜주는 대리인이라고 생각한다.

난 그를 만날 때마다 76년 마지막으로 탔던 오토바이 생각이 난다. 특히 서울 한남동에 있는 그의 매장에 놓인 오토바이를 볼 때마다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내의 얼굴이 떠오르는 게 아닌가. 평소 바빠서 가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처지에 주말마다 나 혼자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 미안했기 때문이다.

李씨는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젊은 시절부터 77세의 나이까지 오토바이를 즐겨 탔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중학생 때부터 오토바이를 탔다고 한다. 아버지와 함께 주말마다 전국 각지를 다니며 같은 취미를 가진 좋은 친구 같은 사이로 지냈다고 한다.

나도 언젠가 아내의 허락을 얻어 李사장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강원도까지 내달려보고 싶다.

올해는 나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다. 지난 1월 초 암참 회장으로 취임한 데다 암참이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이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기를 소망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미력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들을 많이 하고 싶다.

정리=하재식 기자 <angelha@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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