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거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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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며칠전 결혼한지 얼마 안된 친구집을 찾았다. 여학교시절부터 늘 앞뒤로 앉아 다정하게 지냈던 친구였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자주만나 친하게 지냈던 그야말로 흉허물이 없는 죽마지우다.
꿈많던 소녀시절 그친구는 유난히도 자기는 귀공자 타입의 부잣집 아들과 결혼하겠다고 입버릇처럼 꿈을 펼쳤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난후 그친구는 늘 되뇌던 이상형의 왕자님과는 판이하게 다른 학구파의 남성과 결혼을 했다.
그는 친정부모님들의 극구반대를 무릅쓰고 용감하게 단칸 월셋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사치스러울만큼 대단했던 처녀시절을 알았던 사람들은 상상도 할수 없을만큼 그는 소박한 아낙으로 겉모습부터 크게 달라져 있었다. 수수한 바지위에 스웨터를 입고 머리에 간편한 스카프를 얹은 모습으로 그는 열심히 부엌 일을 하고있었다. 전형적인 소박한 시골아낙의 모습이었다.
조그마한 방안에는 작은 장롱하나와 살림도구 몇가지가 전부였으나, 값진 지식과 삶의 보배가 든 교양서적과 전문서적이 양쪽 벽을 메운 책장 가득히 꽂혀 있었고, 그것도 모자라서 예쁜 꽃무늬 벽지를 바른 라면박스를 차곡차곡 몇겹으로 쌓아 그안에도 가득 책을 꽂아놓고있었다.
그도 그의 남편도 책을 좋아한다는것은 알고있었지만 이런 좁은 방에서 살면서 더우기 신혼가정에서 필요한 생활기재나 가구보다는 갖가지 책들로 방을 가득 채웠다는것이 내게는 적이 놀라왔다. 그흔한 TV도 전기프라이팬도 없었다.
『너 혹시 서점이라도 차린것 아니냐』하고 웃으면서 친구에게 물었더니 그는 밝은 미소로만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의 꿈은 조그마한 집 한채를 장만하여 좁은대로 뜨락에는 이름모를 꽃들을 가득 심어놓고 살고 싶다고 말했다. 또 비좁은 대로 남편이 불편없이 책을 보고 공부할 수 있는 서실을 하나 마련할수 있었으면 한다고 그는 덧붙이는 것이었다. 요란한 맨션아파트니 기백만원씩 한다는 고급가구는 생각지도 않는듯 했다.
내집마련을 목표로 매달 적금을 붓고 있다는 그의 말을 듣고 나는 크게 기뻤다. 성실하게 열심히 살고 있는 그들 젊은 부부의 이야기는 일확천금을 꿈꾸고, 허황된 망상으로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익숙해진 나의 귀에는 오히려 희귀한 일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한아름 가슴에 안고갔던 빨간 카네이션과 노란 국화다발을 친구에게 안겨주며 나는 마음속으로부터의 축복을 보냈다. 부디 행복해지라고….
그의 집을 떠나는 나의 발걸음은 그 어느때보다도 가벼웠다.
그리고 이제부터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가 분명하게 느껴지는 마음이었다. 우선 헛된 마음의 사치를 다털어버리고 그러고…. <강원도평창군대화면대화5리3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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