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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국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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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지난 8월 자신의 책 『마음』(사계절) 한국어판 출간에 맞춰 방한했던 재일 학자 강상중(세이가쿠인대) 교수는 ‘문학의 힘’에 관한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2010년 갑작스럽게 아들을 잃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목격하며 느낀 삶과 죽음의 의미를 소설 형식으로 써내려 간 작품이 『마음』이어서였을 게다. 세월호 사고를 겪은 한국에서 문인들이 해야 할 일이 많다고도 했다. “마음의 상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것, 그리고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는 일이 문학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최근 출간된 『눈먼 자들의 국가』(문학동네)에 대한 독자들의 열띤 반응을 보며 그의 말을 떠올렸다. 지난주 출간된 이 책에는 소설가 김애란·김연수·박민규, 시인 김행숙·진은영 등 문인과 평론가들이 쓴 세월호 관련 글 12편이 담겼다. 발간된 지 4일 만에 초판 1만 부가 다 팔려 나가 출판사는 이미 2쇄를 찍기 시작했다. 단행본에 앞서 이 글들이 실린 계간지 ‘문학동네’ 가을호 역시 초판 4000부가 한 달 만에 매진됐다. 1만 부 팔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요즘 출판계에선 드문 사건이다.

 “앞으로 ‘바다’를 볼 때 이제 우리 눈에는 바다 외에 다른 것도 담길 것이다. ‘가만히 있어라’는 말 속엔 영원히 그늘이 질 거다. 특정 단어를 쓸 때마다 그 말 아래 깔리는 어둠을 의식하게 될 거다”라는 김애란의 글은 세월호가 남긴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드러낸다. 소설가 황정은은 “얼마나 쉬운지 모르겠다.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세상은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더는 기대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이미 이 세계를 향한 신뢰를 잃었다고 말하는 것은”이라고 우리의 무기력을 고백한다. “세월호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라고 못박은 박민규는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글을 맺는다.

 누군가는 지겹다고, 잊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문인들의 예민한 촉수에 포착된 세월호를 읽고 공감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아직 위로와 다짐이 필요하다는 증거 아닐까. 평론가 신형철은 책 말미에 “진실에 대해서는 응답을 해야 하고 타인의 슬픔에는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이것은 좋은 문학이 언제나 해온 일”이라고 적었다. 우리에게 지금 더 많은 문학이 필요한 이유다.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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