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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클릭] 여전히 많은 지하철 비매너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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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프랑스 지하철 캠페인 광고가 온라인상에서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예의를 지키지 않는 지하철 승객을 소·멧돼지·새 같은 동물로 표현해 비(非)매너 승객을 꼬집은 광고(오른쪽 사진)였는데, 한국 지하철에도 이런 비 매너가 많아서인지 적지 않은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알면서도 무시하거나, 때론 몰라서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지하철 무개념 승객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특히 최근엔 남자 직장인 사이에 백팩이 유행하면서 이와 관련한 비 매너에 불만스러워하는 사람이 많다. 일본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배낭은 안거나 선반을 이용해달라’는 홍보 포스터를 전동차 안에 붙여 왔다.

지하철 5·6·7·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 정건섭 공익영상물담당 주임은 “2009년 무가지 신문이 많을 때는 ‘신문 반으로 접어 읽고 갖고 내리기’ 홍보를 적극적으로 펼쳤다”며 “지금 지켜야 할 신종 에티켓은 백팩 에티켓”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비 매너 승객은 과연 어떤 동물과 닮아있는지 한번 분류해봤다.

거북이족-내 등에 백팩 있다

“키 큰 남자가 엄청 부피가 큰 백팩을 멨는데. 그 큰 가방이 내 얼굴에 계속 부딪히는데도 정작 자기 자신은 뭔 짓을 했는지 전혀 모르더라고요.”

직장여성 이모(27·의정부시 호원동)씨는 1호선 망월사역~시청역 사이를 매일 출퇴근한다.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출근 시간 가장 큰 적은 백팩족(族)이다. 백팩은 과거 주로 학생이나 등산객이 썼지만 최근엔 양손으로 스마트폰을 보려고 직장인까지 백팩을 메다보니 출퇴근 시간 백팩족이 상당히 많다.

이씨는 “백팩을 등 뒤로 메면 공간을 많이 차지할 뿐더러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가방은 좌우로 크게 흔들리기 때문에 바로 뒤에 서 있는 사람과 부딪힌다”며 “사람들이 많을 때는 손에 들거나 선반에 올려 놓으면 좋으련만 그런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3호선 대청역~양재역으로 매일 출퇴근하는 최모(43·일원동)씨도 “지하철에 타면 이어폰 꽂고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볼 때가 많은데 백팩 멘 사람이 지나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가방으로 이어폰 줄을 끌고 가는 경우가 많아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백팩과 관련한 소소한 다툼이 자주 벌어지자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지난 5월 ‘백팩을 메셨다면’이란 에티켓 홍보 동영상을 만들었다. 서울도시철도공사 정 주임은 “전동차마다 설치한 행선안내기에 30분에 한 번씩 내보내고 있다”며 “이후 민원이 조금 줄었지만 아직 에티켓이 정착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황소족-나는 무조건 직진

전부터 계도 작업을 했다고 꼭 에티켓이 잘 지켜지는 건 아니다. 승하차 비매너가 대표적이다. 전동차에서 승객이 내리기 전에 먼저 타는 것 말이다. 잠실에 직장이 있는 손모(29·개포동)씨는 “자주 겪는 일”이라고 말했다. 손씨는 “퇴근 후 주로 강남역 주변에서 약속을 하는데 이상하게 이 역에 내릴 때마다 겪는다”고 말했다. 김광흠 서울메트로 홍보실 차장은 “강남역은 하루 승하차 인원이 23만 명으로 서울 지하철역 중 가장 많다”며 “하차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이를 참지 못해 먼저 타는 사람이 있다”고 설명했다.

공무원 이모(52·구의동)씨는 “평일 출퇴근 시간대는 그나마 예절을 잘 지키는 편이지만 주말에 간혹 사람 많은 역에 가보면 이런 모습을 자주 본다”며 “평소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에티켓을 잘 몰라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닫히는 전동차 문에 가방을 던져가며 급하게 전동차에 타는 사람도 늘 있다. “오죽 급하면 저럴까” 싶기도 하지만, 전동차 출발시간을 지연시키는 데다 때론 고장을 일으킨다는 걸 감안하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매미족-우린 떨어질 수 없어

젊은 커플의 애정행각도 비 매너 중 하나다. 직장인 이모(28·구로동)씨는 “남편이랑 연극 보고 혜화역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젊은 여자가 몸을 못 가눌 만큼 술에 취해 남자 친구에게 안겨 있더라”며 “보는 것도 그다지 보기가 좋지 않았는데 주변이 다 들리게 큰 소리로 외설적인 대화를 해서 민망했다”고 말했다.

직장여성 송모(28)씨는 “지난번 퇴근할 때 보니 커플이 한가운데서 서로 안고 있더라”며 “시청에서 잠실까지 30분 내내 남자가 여자 몸을 더듬는데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정말 난감했다”고 말했다. 이모(41·내곡동)씨는 “홍대입구·신촌·강남역 등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유흥가 주변 역이 많은 2호선은 금요일 늦은 시간이면 술에 취해 심하게 애정 표현을 하는 커플이 많다”고 했다.

 
오리족-난 원래 시끄러워

대중교통 내 소음도 늘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시끄럽게 통화하는 건 물론이오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볼 때 이어폰 없이 볼륨을 높여 불편을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직장인 김모(38)씨는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바로 앞에 선 여자가 이어폰 없이 드라마를 보더라”며 “드라마 속에서 애가 하도 시끄럽게 울어 째려봤더니 볼륨을 좀 줄이는 척 하더니 금세 다시 시끄럽게 하더라”고 말했다. 직장인 박모(29·창동)씨도 “큰소리로 통화하는 사람은 흔하게 본다”며 “특히 퇴근 시간이면 프로야구 경기를 볼륨 크게 틀고 보는 40~50대가 많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냥 참는 건 신경 쓰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괜히 싸움으로 번질까봐인데 당사자는 이를 전혀 모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염소족-나보다 어리면 다 어린애지

노약자석을 둘러싼 소란도 많다. 노(老)-청(靑) 갈등이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주로 노(老)-노(老) 갈등이다. 주부 하모(70·인천 학익동)씨는 3년 전 겪은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기분이 상한다. 친구와 함께 1호선 노량진역에서 타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하씨는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데 술 취한 웬 늙은 남자가 다짜고짜 ‘요즘 젊은 X들은 노인이 왔는데 일어나지도 않는다’며 욕설을 퍼부었다”며 “그게 내 나이 67세 때 겪은 일”이라고 했다. 윤모(68·서초동)씨는 “얼마 전에 3호선 충무로역을 지나는데 술에 취한 60대가 노약자석에 앉았고 얼마 후에 탄 70대가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하자 말다툼이 생겼다”며 “이런 경우를 종종 보는데 꼭 한 명은 술에 취해 있더라”고 말했다.

조한대 기자 ch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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